학창 시절, 나는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께서 큰 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치셔서 휠체어를 타게 되신 후, 나는 몸을 쓰는 일이 무서웠다. 늘 극단을 생각했다. 학교에서 다양한 구기종목을 배울 때는 공에 눈을 맞아 실명하게 되는 일을 상상했고, 발목을 자주 삐었기에 달리기를 할 때는 발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뜀틀은 절대 뛰어넘을 수 없을 것처럼 높아 보였고, 체중을 지탱해야 하는 손목에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중에 가장 끔찍했던 것은 구르기였다. 앞구르기를 하다가 분명히 아버지처럼 척추가, 혹은 최악의 경우로 경추가 부러지고 말 거라는 공포심에 단 한 번도 앞구르기를 해본 적이 없다. 체육 시간이 되면 늘 두려움에 떨었고 실기시험은 번번이 응시를 거부하고 그냥 최저점을 달라고 자진해서 말하곤 했다.
운동을 싫어하니 점점 더 몸을 사용하는 데 자신이 없어졌다. 체력도 점점 떨어졌다. 아직도 고등학교 때 학년 전체가 갔던 등산이 생각난다. 야트막한 산이었는데도 나는 일찌감치 무리에서 뒤처졌다. 어마어마한 길치인 나는 무리에서 낙오되면 이 산에서 혼자 길을 잃고 조난될 것을 확신했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는데, 우리 반 부반장은 몸이 날렵하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였다. 부반장에게 제발 나를 데리고 가달라고, 버리지 말라고 애원해서 간신히 그 아이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반장도 내가 너무 따라오지 못하니 짜증이 나는지 나와의 간격을 점점 더 벌리며 홀로 앞으로 나아갔다. 성적 면으로는 우등생이었기에 그때까지 학교생활을 하며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부탁해 본 적이나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 나는 그 아이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만큼 비굴하고 절박했다. 그때 느낀 굴욕과 공포는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지옥 같은 순간 중 하나이다.
내 몸은 늘 나를 철저히 배신했지만, 나의 정신은 늘 나에게 쾌감과 승리를 안겨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머리로 하는 건 다 잘했다. 무언가 해내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나는 늘 정신력을 이용해서 몸의 불평에 재갈을 물렸다. 부족한 근육과 약한 체력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온갖 근육통에 시달렸기에, 고등학교 때 오래 앉아 공부하는 것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욕심이 많았고, 그래서 마치 몸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나는 어깨나 허리의 통증, 졸림, 배고픔, 갈증 같은 것에 무디어지도록 자신을 훈련했고, 아픈 데가 있어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잠은 늘 4시간 정도로 짧게 자는 편이었다. 당시에는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이 모두 존재해서 12시에 하교해서 6시에 등교하던 때였는데,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엎드려 잘 때도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책을 읽었다. 나라고 피곤하지 않았을 리 없는데, 이상하리만치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척했던 것 같다. 몸 여기저기에 늘 통증이 있었지만 나의 정신적 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만성 두통뿐이었다. 두통이 찾아오면 눈알이 빠질 것같이 아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책을 볼 수도, 공부를 할 수도, 피아노를 칠 수도 없었다. 그럴때마다 눈을 감고 상상 놀이를 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버르장머리 없이 유약한 몸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웠다.
대학교 때 결국 이른 나이에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지만, 오래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30대가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몇 년 전의 일로, 거울 속 피곤해 보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날로 기억한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가 아무렇게나 한참 뛰다가 들어왔다. 분명 몸은 더 지쳤을 텐데도, 돌아와 거울에 비춘 얼굴에는 전과 다른 생기가 있었다.
그 이후 자주 혼자 달렸다. 처음에는 매일 여기저기가 아팠다. 허리가, 엉덩이가, 발목이, 무릎이. 하지만 늘 답답함을 느끼던 가슴이, 심장이 터져나갈 듯 달린 후에는 시원해지는 경험을 한 후로는 달리기를 그만두기 어려웠다. 30대가 되어 찾아온 불면증에 잠이 없어진 나는 새벽 두 세시, 혹은 네 시부터 일어나 뜬 눈으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어스름하게 밝아오자마자 설레며 나가 산책로를 뛰었다. 처음 근 일 년은 매일 똑같은 코스만을 달렸다. 우리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박물관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오는 코스였다. 박물관에는 나무다리가 있는데 나는 절대 그 다리를 넘지 않았다. 아마도 그곳이 내가 정한 나의 한계 같은 것이었나보다. 내 체력으로 갈 수 있는 곳, 또 출근 시간 전까지 안정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길치인 내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곳 등등의 이유로.
어느 날,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경계를 살짝 넘어봤다. 그러다가 몇 달 후엔 3km 떨어진 예쁜 카페들이 즐비한 카페거리까지, 그러다가 또 몇 달 후엔 4km 떨어진 호수공원까지 가보게 되었다. 물론 예상대로 길을 잃어서 한참을 헤매다 구글 지도를 보고 간신히 집에 돌아왔지만. 그렇게 몸의 한계를 조금씩 늘려가며, 나는 늘 나를 실망시켰던 몸과 서서히 화해했다.
달리기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육체적인 일이었다. 이를 통해 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른 것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기쁨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달리기를 하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반드시 기분이 좋아졌고, 불안정하고 예민하던 정서도 안정되었다. 몸이 정신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고서, 나는 전보다 몸에 대해 느끼고 고민해보게 되었다. 몸을 통해 정신과 기분을 고양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탐험가가 되었달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내게 잘 맞는 운동을 찾다가 수영과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또한 집중해서 먹는 즐거움, 숙면의 소중함에 눈뜨게 되기도 했다. 지금 내 삶에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다채로운 육체적 즐거움이 있다.
“정신으로만 이루어졌던 나의 반쪽짜리 세계에서, 몸의 세계로 이어지는 길을 안내해준 것이 달리기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제와서 되돌아보니 정신과 몸이 불균형하게 발달하며, 나는 실제 세상보다는 내 머릿속 좁은 세계에 갇힌 답답한 사람이 되어갔던 것 같다. 늘 생동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현실 세계보단 책 속의 정돈된 세계를 선호했고, 이해하기 어려운 실제 사람들보다는 작가에 의해 창조된 캐릭터에서 안정을 느끼곤 했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닫는다. 요새는 운동하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며, 또 때로는 섞이기도 하며 조금씩 나와 세상 사이에 그어진 선을 군데군데 흐릿하게 해보려고 노력한다. 아직은 이래서 되겠나 싶은 날들이 많지만, 내 멋대로 그려놓았던 세상의 밑그림과 나의 자화상을 조금씩 고쳐가는 시도만으로도 내게는 의미 있는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