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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와 아메바 사이

이제야 시인과 시 합평 수업 과제 - 가을

by Dahl Lee달리

오랫동안 꽃이 피지 않는 봉선화가 있었지요

애지중지 물을 주고 추위와 더위에 들고 날던

연두색 부드러운 잎이 하늘 높이 풍성하게 자랐지만

절대로 꽃봉오리만은 생기지 않았지요


동물 새끼고 사람 새끼고 그저 삶이 너무 살만하면 애를 안 낳으니 복지고 뭐고 없애버려야 애를 싸지르지 않겠냐

하던 아무개의 말에

독한 마음으로 물도 끊고 추운 바깥에 내놓았더니

다음날 바로 꽃망울을 맺더군요

꽃을 피우려면 시련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저 닳고 닳은 말인 줄 알았는데


무섭게 만개하던 봉선화는

씨주머니가 생긴 후부터

모질게 말라가기 시작했어요

삶의 미련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을것 같이


아메바처럼 자기복제를 하는 생물들도 있다지만

어떤 이유로

인간도 봉선화도 죽음을 준비하는 쪽을 택했지요


부모가 된다는 것은

봉선화처럼 모진 죽음을 준비하는 것


그러나 오늘도 내 뜨거운 손은 쉽게 식지 않고

식욕은 늙은이의 노망처럼 타오르고

여전히 버석대기보다는 끈적하게

나를 복제한 것들로 우주를 채우는 나는

아메바일까요 봉선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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