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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by Dahl Lee달리

나의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가장 독특한 사람이었다. 역동적인 생명력의 결정체라고나 할까. 나는 어린아이였을때부터 할머니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절대로 돌아가시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할머니는 그 특유의 생동하는 에너지로 죽음과의 결투에서 펀치를 날릴 스타일이라고.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강단있게 가래침이라도 뱉을거라고. 그리고 역사 속 많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불로불사를 마침내 획득할만한 사람이라고.


할머니는 활달한 성격에 친구가 많으셨고, 운동과 가무, 음악을 좋아하시는 그야말로 예능인이었다. 운동을 싫어하던 내게 고무줄 놀이나 줄넘기를 알려주신 것도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달리기도 고무줄도 줄넘기도 공놀이도 나보다 잘했다. 신이 나면 표정이나 목소리로만 웃으시는게 아니라 온 몸을 이용하여 사뿐사뿐 춤을 추시곤 했다. 정적이고 내성적이었던 내게 할머니는 늘 나와는 다른 신인류 같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언젠가 내게, 할머니의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초등학교 음악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만큼 음악은 할머니께 각별한 존재였던 것 같다. 특히 황성 옛터나 알뜰한 당신, 목포의 눈물같은 1930년대 옛날 가요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였다.


내가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진지하게 열중한 것은 실용적인 목적이 컸는데, 바로 할머니의 신청곡을 연주해주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에게는 너무 오래되어 책장이 노랗게 바스락거리는 “흘러간 옛노래” 라는 책이 있었다. 표지 바로 뒷편의 공백 페이지에 할머니를 닮은 강건하고 활달한 글씨로 TV에서 배운 요리 레시피가 빼곡히 적혀있는 그 책을, 할머니는 내게 매일 연주해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나는 매일같이 한시간씩은 모짜르트나 베토벤을, 나머지 한시간은 “흘러간 옛노래” 에 실린 일제강점기 시절 유행가를 연습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비록 내 연주가 레코드보다 서툴러도 더 생생하다는 이유로 언제나 나의 모자란 피아노를 선호하셨다. 할머니는 까다로운 청자였다. 요청하시는 곡을 실수 없이 연주해도 내가 감정을 충분히 싣지 않으면 못마땅해 하셨다. 우리집 피아노는 건반이 무겁고 음이 깊은 삼익피아노였는데, 빠르고 경쾌한 모짜르트 소나타를 칠때보다는 느릿하고 슬픈 옛날 가요를 칠때 더 빛이 났던것 같다.


할머니는 웃음이 많으셨는데, 웃음이 한 번 터져나올때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포복 절도하시곤 했다. 머릿속 웃음 버튼이 켜질 때면 잠시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가, 마치 거대하게 부푼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듯한 소리를 내며 옆에 사람의 몸을 때리면서 웃었다. 그런식으로 할머니의 갑작스런 터치를 당한 사람들은 할머니의 팬이 되기도, 혹은 안티가 되기도 했다. 또한 목소리가 몹시 크셨는데, 특히 행복감에 도취되셨을때 더욱 그랬다. 쩌렁쩌렁 퍼지는 목소리가 마치 현악기의 현을 있는 힘껏 문지를때 내는 목소리같다고, 어린 나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할머니는 또한 자주 울었고 자주 화를 냈다. 멀쩡히 이야기를 하다가도 남들이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갑자기 서글픈 울음이 차오르시기도 하고, 평범한 대화중에도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욕을 하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오래 힘겨웠던 삶에서 누적되었던 슬픔과 설움, 분노가 그런식으로 일상의 작은 균열을 비집고 터져나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어렸을때는 할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몰랐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또 할머니를 더욱더 사랑하고 관찰하게 되면서 나는 어느정도 할머니의 감정의 패턴을 예측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녀의 성품이 어떤 사람들에겐 지나치게 극적이라고 묘사되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우울증 약을 드셨던 사실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녀의 다채로운 인격은 어쩌면 그녀의 인생내내 그녀를 괴롭혔던 우울증, 혹은 정동장애의 증상었을수도 있겠다고. 하지만 그 인격형성의 뿌리가 어디든간에 그녀가 내가 만나본 가장 다채로운 사람임은 변함이 없다.


어렸을적 눈치가 둔하고 자기세계에 내향적으로 매몰되었던 나는 세상과 잘 섞이고 싶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었다. 세상은 내게 주석이 달리지 않은 어려운 상징소설 같았다. 여러번 읽고 또 읽어야만 어렴풋이 맥락을 약간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모호하고 안개같은 소설. 등장인물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는지, 작가의 의중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소설.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가끔씩은 책장을 아예 덮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들던 소설. 그중에서도 종잡을 수 없던 할머니는 내가 가장 이해하고 싶었던 미스테리한 주요 캐릭터였다.


어떨 때 할머니는 지극한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할머니는 내게 자신이 젊었을때 얼마나 복사꽃같이 뽀얗고 예뻤는지, 어린시절 얼마나 총명한 소녀였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는지, 시부모님께 얼마나 사랑받으셨는지, 이마는 얼마나 반듯하고 발은 아직까지도 얼마나 하얗고 예쁜지, 자주 신이 나서 자랑하셨다. 나는 그럴때마다 할머니가 유치한 어린아이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막상 내가 할머니께 지극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정표현을 할때는 그저 몸둘바를 몰라하셨다. 가끔 할머니를 모시고 좋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할머니는 낯선 공간보다는 할머니 자신이 소중하게 위하여지는 순간을 더 어색해 하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말년에 고관절 골절로 거동이 불편해 지시면서, 나는 할머니를 전보다 좀 더 챙겨드리려고 노력했었다. 그래봤자 주전부리를 사다 드리거나, 가끔 기저귀 갈아드리는 일, 잔심부름 정도였지만. 며느리나 아들, 간병인보다는 손녀가 더 편할것 같아서, 또 마침 한의원이 친정 근처라서 점심때마다 할머니를 보러 들렀는데, 그래도 와상상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께서 침대에 누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왜 이렇게 할머니께 잘해주냐고. 나는 “할머니가 나 키워줬으니까 당연히 잘해드려야지.” 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아니야. 다 그렇지가 않아..”라고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하셨는데, 언제나 말씀이 거침없이 많은 편이셨던 할머니가 말을 삼키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나는 늘 눈물이 난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변변찮은 애정마저 감격해하셨던 할머니가 속상한 것이다.


지금은 그저 아버지가 할머니에 대해 쓰신 책을 통해 이런저런 짐작을 할 뿐이다. 할머니의 자기애와 자기혐오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는 어쩌면, 할머니가 지나왔던 힘든 삶이 할머니의 자존감에 생채기를 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유년기에 전염병으로 동기들과 생모를 잃고,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새 남동생이 생기고, 치워지듯 어린나이에 떠밀려 결혼한 후, 무능하고 못생긴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진 긴 고난의 시간… 할머니의 인생은 할머니에게 사랑을 주기보단 늘 무섭게 다그치는 쪽이었던 것 아니냐고. 그래서 마땅히 받아야하는 사랑과 작은 존중에도 할머니는 몸둘바를 몰라하셨던 것이었냐고. 나는 종종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들을 허공에 던져본다.


이유야 어쨌거나, 할머니는 참으로 이상하고 신비한 사람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할머니의 독특한 분위기에 기여했던 특징 중 정점은 바로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였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방식은 굉장히 특이했는데, 특히 리듬과 어휘가 그랬다. 그녀는 전북 남원의 한 작은 시골마을 출신이었는데, 할머니의 말투는 내가 종종 TV에서 들었던 전북지방의 주요 방언과는 매우 달랐다. 나는 할머니처럼 말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오로지 그녀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는 마치 무언가를 간청하는 듯 혹은 누군가를 애도하는 듯했다. 이는 그녀의 성격과 기가막히게 들어맞아, 마치 그녀의 슬프고 애끓는 정신이 그녀의 말에 스며들어 배어오는것 같았다. 할머니의 말투는 그녀의 영혼처럼 끈적하고 굴곡졌고, 그녀를 송두리째 뒤흔들던 기쁨과, 또 그 후에 이어지던 슬픔의 파도처럼, 높아졌다가 뚝 떨어졌다가 했다. 수원에서 자란 내가 가장 익숙한 말투는 건조하고 평탄하며 다소 떽떽대는 수원 사투리라고 볼 수 있는데, 할머니의 끈적한 말투는 그와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어 내게 진한 인상을 남겼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릴적, 할머니가 내게 슈퍼에 가서 “지름”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나는 슈퍼 주인에게 “지름”이 어디있냐고 물었고, 그는 “지름”같은건 없다고 했다. 나는 아닐거라고, 분명히 “지름”이 있을 거라고 멍청하게 단어를 되풀이했지만, 주인은 여전히 그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빈손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지름”이란 “기름”을 의미하며, 식용유를 사오라는 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TV를 통해 사투리는 보통 다른 지역 사람들도 어느정도 이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이것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나도 슈퍼 주인도, 둘중 어느하나도 할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지름”이란 단어가 할머니가 혼자 고안해 낸 독창적인 단어라고 생각했고, 이는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사람이라는 나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할머니에 대한 나의 가장 소중한 기억중 하나로, 나는 할머니가 이렇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우습게도, 할머니처럼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할머니 뿐이라는 믿음은 어느날 아주 간단히 산산조각났다. 할머니께서 어이없는 낙상사고로 와상상태에서 힘들어하시다가 돌아가신지 몇년 후로, 나는 여전히 그로 인한 상실감에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한채 깊이 상심해있던 때였다. 한의사인 나는 평소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들을 마주하고, 그들 중 특별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그 날은, 나이든 여자 환자 하나가 치료실 커튼 뒤에서 내 할머니랑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커튼을 살짝 젖혀볼 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부활하신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실망스럽게도, 커튼 안에는 깡마른 내 할머니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체구가 큰 여자 노인이 있었다. 하지만 곧 내 상상력은 그녀가 할머니의 잃어버린 동생쯤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뻗어나갔다. 아니였다. 여러 질문 끝에 다다른 결론은 그녀가 할머니와 동향 사람이며, 할머니의 독특한 언어는 그저 그 작은 지역에서 공유되던 방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때 받은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이었고,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가서 따지기라도 하고싶은 심정이 한동안 지속되으니까.


곰곰히 돌이켜보면,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께 입히고 먹이고 키워지며 그녀에게 숱한 영향을 받았고, 그 중 어떤것은 나 스스로 ‘유산’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이다. 역동적인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 또 슬픔과 설움에 대한 감수성 같은 것들. 또 무엇보다도 언어에 대한 흥미.

비록 할머니의 언어는 이 세상에 유일한 독창적인 창조품은 아니었고, 숱한 복제품이 있는 기성품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가 사용하던 독특한 언어와 그녀만의 독특한 인격의 조합은 내게 거대한 오해 를 만들어냈다. 언어가 곧 그 사람 자체라는 믿음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그들의 영혼의 깊은 비밀을 파악해내려는 주제넘은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목소리의 톤, 리듬과 세기, 즐겨 선택하는 단어, 문장을 끝마치는 방식과 연결하는 방식에 집중하는 것…이것은 섬세함이 필요한 일이라, 본래 투박하고 거친 성격인 나는, 할머니 덕택에 나의 단점을 중화시키는 섬세함을 기르는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할머니를 통해 기묘한 방식으로 언어에 집착하게 되었고, 이것은 나의 근간을 이루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할머니는 또 내게, 지극히 사랑받는 느낌과 외로움의 감각을 모두 가르쳐 주셨다. 할머니는 내게 쏟아지는 햇빛같은 사랑을 주시면서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이나 된냥 나를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할머니 곁에는, 종종 할머니의 드라마틱한 성격에 기함하며 그녀와 불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그럴수도 있지. 그럴만 하지. 할머니는 너무 특이해서, 오로지 나만이 그녀의 깊은 영혼의 비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히 세상에 이해나 공감을 구할 수 없는 나의 소중한 비밀. 할머니에게 사랑받고 할머니를 사랑할수록, 나는 세상에 그녀와 단둘이 남겨진듯한 이상한 외로움에 떨곤 했다.


날마다 할머니 생각을 한다. 다행히 기억력과 상상력이 좋은 나는 눈을 감으면 할머니의 얼굴과 육성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신이나서 어깨춤을 추시던 모습, 어디선가 ‘애매한 오해’를 받고 분노에 차 상상속의 적을 향해 눈을 흘기시던 표정. 밤마다 추측하기도 어려운 악몽으로 힘들어하시며 고함을 지르며 깨시던 모습하며. 특히 작가이신 아버지가 쓰신 할머니의 육성을 담은 책을 읽으면, 금방이라도 할머니 곁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할머니의 말투를 빼어닮은 그 환자가 한의원에 올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환대를 한다. 그녀의 간청하는 듯, 애도하는듯한 애끓는 말투를 들으며, 나는 바로 그자리에서 할머니의 현신을 만난다. 할머니의 말투만 꼭 빼어닮은 그녀와 나는 서로 대화를 하고 웃음을 나눈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의 글로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도 할 수 없는 미묘하고 이상하고 신비로움 경험이다.


할머니는 비록 돌아가셨지만, 나는 할머니가 그립기보다는 여전히 할머니와 함께 사는 기분이다. 할머니의 말년에 그녀를 슬프고 힘들게 했던 육신은 없어지고, 다만 형형하고 아름다운 정신만 남아서. 그녀의 말과 행동을 복기하며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그녀를 사랑했던 가족들과 내가 몰랐던 일화를 나누며, 혹은 아버지께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녀가 남긴, 그녀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아직도 내 피아노 위에 있는 “흘러간 옛노래” 책을 뒤적거리며. 그녀가 남긴 손수 남긴 요리 레시피를 자세히 읽어보기도 하며.


나이를 먹었어도 세상은 내게 여전히 뿌연 안개처럼 어려운 소설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할머니를 사랑하면서, 또 여전히 할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그 어려운 책에 열심히 나만의 주석을 달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주석 덕분에, 막막했던 책은 한결 편해지고 포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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