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에 디멘터라는 존재가 나온다.
온몸에 두른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채 허공 위를 떠다니는 귀신 같은 형상. 키도 상당히 큰 데다 망토 안쪽의 피부는 익사체마냥 창백하고 딱지 투성이다. 평소에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녀서 잘 안 보이지만 얼굴에는 눈이 없고 뻥 뚫린 구멍 같은 입만 있다.
이들이 근처에 오면, 갑자기 싸늘해지며 주변이 얼어붙는다. 이들은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감정을 빨아먹기 때문에 디멘터와 오래 있으면 삶에서 끔찍한 기억밖에 남지 않게 된다. 특히 과거에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은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디멘터의 공격을 받을 때 발작을 일으키다가 쓰러져 경련하기도 한다. (인생에 비극을 많이 겪은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들보다 디멘터에게 더욱 취약하다. 해리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디멘터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다.)
디멘터를 무찌르는 마법이 "패트로누스"란 마법이다. 패트로누스는 온 힘을 다해 아주 행복했던 단 하나의 기억에 집중할 때에만 불러낼 수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외우면서 행복한 생각을 해야만 한다. 이 생각은 실제 기억이든, 그냥 상상이든 상관없다. 해리는 학기중에는 호그와트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방학때는 자기를 학대하는 이모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학대받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내가상상할 수 있는 제일 큰 지옥이다) 해리가 패트로누스 마법에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 의지한 행복한 생각은 자신을 학대해온 이모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시리우스)과 살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었다.
행복한 기억이 아닌 미래에 대한 상상에 의존했다는 것이 내겐 흥미롭다. 해리는 고아였고 유년기를 이모집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컸다. 패트로누스 마법을 하며 행복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지만(자기가 마법사임을 처음 안 순간처럼), 마법을 성공시키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어떤 순간에 기대어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을까. 괴롭고 힘든 순간을 돌파해 나갈 행복한 기억 혹은 상상이 현실의 패트로누스일텐데 내게는 해리만큼 강력한 순간은 없다. 행복까진 아니지만 소소하고 희미한 즐거운 기억들 몇개 정도. 뭐가 있을까 하나씩 꼽아봤다.
어릴때 아빠가 내가 쓴 보름달이란 시를 예쁜 노트에 예쁜 글씨로 옮겨주시던 순간.
할머니한테 딱 한 번,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더니 "애매한 유기장수"라는 이야기를 해주신 일. (스토리가 굉장히 더럽고 참신했다)
여름밤 공원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업어준 기억.(누구 등에 업혀본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너무 포근하고 감동적이었다)
행복한 미래에 대한 상상은? 우습게도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미래를 살지 않는 사람이다.
나의 평상시 기분은 약간 우울한 쪽이다. 디멘터를 어깨에 업고다니는 기분. 이런건 그저 타고나는 기질에 가깝다는걸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앞으로 우울감이 지나쳐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때는 이 기억을 바탕으로 패트로누스를 불러내야겠다. 아빠랑 엄마랑 할머니랑 그날밤 업힌 등의 온기를 떠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