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요일. 내 소중한 휴일.
원래대로라면 새벽에 수영 강습을 갔다가 필라테스를 하고, 이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랑 독서를 하는 루틴이다. 그러나 이번 달부터 화목에는 저녁강습을 듣기로 했고 천골 골절로 필라테스를 정지시켜 놨기에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 와서 공부를 했다.
여느 때와 비슷하게 새벽 5시에 일어났는데 오늘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가슴이 텅 빈 느낌이었다. 운동을 못하는 만큼 마음으로는 독서랑 공부, 글쓰기 양을 늘려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막상 뇌는 기능이 떨어져 있어서 평소보다 높은 부하에 아직 적응되지 않은 느낌이다. 초음파 강의 동영상을 연속 4개째 보니까 갑자기 급격하게 졸리고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각성되고 쌩쌩해지는 스타일인데..(그래서 밤에 공부하면 잠을 잘 못 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점심을 건너뛰었구나. 아침을 보통 스킵하거나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점심은 잘 챙겨 먹으려고 하는 편인데 깜박해버렸다. 운동스케줄이 빠지면서 루틴이 다 바뀌니까 밥 먹는 것도 헷갈린다. 밥을 먹고 다시 글을 쓸까 하다가... 조금이라도 글쓰기를 해놓고 먹기로 한다. 기본적으로 '미래의 나'에 대한 신뢰가 없는 편이라 해야 되는 일은 지금 당장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수영 연습처럼 매일 하지 않으면 문장을 만들 때 어색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입으로 말하는 문장과 글로 쓰는 문장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몇 년간 영어로만 글쓰기 연습을 하고 한국어로 글쓰기를 안 했더니 긴 문장을 만드는 게 어색해져 버렸다. 그래서 아무 주제로라도 무조건 매일 글을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쓸데없는 주제로 산만하고 긴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하다.
계속 읽으려고 벼르던 책중에 안톤 체호프의 <제6호실>과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와 <우국>이 있다. 더 이상 책을 물리적으로 늘리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도서관 대여나 전자책을 이용하려는 편인데 이 책들은 도서관에서 잘 구할 수 없었다. 제6호실 같은 경우는 체호프의 다른 단편들에 비해 유명하지 않아선지 단편선에서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고, 미시마 유키오는 이 작가의 극우적 정치성향 때문에 도서관에 많이 비치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얼마 전 제6호실을 전자책으로 결제해서 읽고 있는데 하이라이터를 써가며 꼼꼼히 읽다 보니 진도가 몹시 늦다. 그래서 살짝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어쨌건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고 있다는데서 위안을 얻어야겠다.
도서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정기간행물실>이다. 이곳은 신문과 잡지를 위한 공간이다. 거의 멸종 직전에 이른 종이신문과, 그걸 읽는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 문을 열면서부터 신문의 잉크냄새가 어지럽도록 가득하다. (기분 좋은 어지러움이다) 문 옆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쓰던 고인쇄기가 전시되어 있고, 저 멀리에는 야트막하게 정겨운 산이 넓은 창으로 크게 펼쳐져 있다(이 도서관에서 뷰가 제일 좋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예쁜 통나무로 만든, 커다랗고 결이 고운 책상이 2개나 있다는 것. 한쪽 구석으로는 <전시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이곳에는 내가 사는 도시 수원의 모든 도서관이 수채화로 그려져 옹기종기 전시되어 있다. 천국 속의 천국이랄까.
초 1, 2학년 때 나는 정자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정자초등학교는 오래된 학교답게 도서관이 아주 크고 좋았다. 그 학교의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오직 도서관의 풍경과 그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은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난다. 고심해서 고른 책을 도서관 제일 구석에 앉아 햇빛을 맞으며 읽었던 것도. 그 평화롭고 아름답던 고요한 공기도. 이 정기간행물실에도 오후에 그렇게 햇빛이 쏟아진다. 하늘과 숲이 멀리 보이고 그 아래에 책을 펼친 내가 햇빛을 맞고 있다. 참으로 완벽한 시간이다.
다들 죽고 나면 어디에 묻힐까 한 번쯤 생각해 보겠지. 나는 도서관에 묻히고 싶다. 엄마한테 내 뼛가루를 도서관 구석에 몰래 뿌려달라고 하고 싶지만(우리 엄마라면 해줄 것 같다) 청소부 아저씨가 아주 빨리 닦아내실 것이다(엄마라면 영리하게 아저씨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뼛가루 대신 언젠가 내가 쓴 책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에 비치하고 싶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읽혀서 내가 죽고 난 후에도 눈에서 눈으로,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면 그것이 내겐 영원히 사는 것이다.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닌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정말 기쁘고 편안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