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목사님과의 상담

by Dahl Lee달리

얼마 전 교회 교구목사님과 교구장님, 그 아내분(총무님)과 처음으로 길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함께 교리공부를 하거나 치료받으시러 한의원에 오시긴 했지만 목사님과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떤 적은 처음이다.


우리 교구 목사님은 30대 초반이셨나, 나보다 어리시다. (대형교회라 담임목사님 밑에 여러분의 교구목사님이 계신다.) 아주 솔직한 분이셔서 함께 교리공부를 하다 의문점이 생겨서 질문을 하면 자기도 그 부분을 잘 모르겠다고 같이 혼란스러워하시곤 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살도 넘었는데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이집트 파라오...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사라는 90살이 넘어도 탐나는 여자였나요? 나이를 세는 시스템이 달랐던 걸까요?)


한의원에 허리가 아프셔서 몇 번 오셨는데 정장을 입고 오셔서 쉬는 날에도 계속 정장을 입으시는 거냐니 그렇단다. 어릴 적 정장 입는 직업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목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새로 옮긴 교회의 거의 모든 게 다 좋은데 그중 우리 교구 목사님과 교구장님과 총무님이 특히 좋다. 교구목사님은 나보다 어리고 귀엽게 생기셔서 나도 모르게 함부로 대한다. 전 교회에서는 목사님 눈도 무서워서 못 맞췄는데 그렇게 함부로 목사님을 대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치유효과가 있다. 목사님이 한의원에 오실 때 근처 맛집에서 베이글을 사다 주셨는데 그런 센스도 좋다. 설교말씀을 아이패드로 준비하시는 것도, 나보다 더한 앱등이인것도 맘에 든다.


우리 교구장님과 총무님, 이 교회에선 가장 님과 가정총무님이라고 부르는 두 분들도 좋다. 두 분은 부부신데, 남편분이 내게 생소한 방산업계에 근무하시고 토커티브 하신 편이라 늘 만남이 흥미롭다. 그분이 하시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이 교회에 나가는 쏠쏠한 재미다.


두 분께는 두 아들이 있는데 그중 이십 대인 큰아들에게 중증 자폐가 있다. 교구모임을 할 때 가끔 데려오시는데 두 분은 아들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전전긍긍하신다. 그 모습이 늘 아름답고 슬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괜찮은데. 나는 좀 더 편한 사람처럼 굴 수도 있지만 언제나 조금 차가운 표정에 말수를 줄이는 편이다. 유치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삐진 티를 낸달까. 목사님도 교구장님도 총무님도 다들 좋지만 절대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나는 이토록 유치하다.·


전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고민이 있거니 힘든 일을 얘기하면, 다 같이 그걸 위해 기도해 준다고 문제를 꺼내놓게 하고 그것이 다시 그들의 약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정말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교회사람들에게는 그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나 둘만 아는 비밀로 간직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목사님과 교구장님, 총무님께 글쓰기에 대한 꿈과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툭 털어놨다. (피곤해서 살짝 미쳤었나 보다.)기도제목을 올리라고 하셔서 글쓰기로 성과를 내고 싶다고 적고 여쭤보시는 것에 대해 내 솔직한 상황설명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신기했다.

이전 교회에선 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기도제목을 썼더니, 목사님은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엔 관심도 갖지 않으시고 난데없이 목사님의 일대기를 정리한 자서전을 쓰라고 하셔서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나를 철저히 도구로만 보시는구나. 그리고 목사님은 정말 심각한 나르시시스트구나 하고.


새 교회 교구목사님은 내가 F보단 T라고 너무 문학적인 글보단 실용적인 책이 나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이상하다. 나는 F인 것 같은데...) 아무튼 나를 도구가 아닌 나로 봐주시는 그 관심 자체가 감사해서 기쁘고 또 기뻤다. 글 분야랑 책 제목도 같이 고민해 주시고, 용기도 많이 주셔서 참 즐겁고 산뜻했다. 언제나 두려운 하나님이 그날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나님께 어리광을 부리듯 목사님께 울며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참아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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