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의 유산

아버지의 심장, 어머니의 눈

by Dahl Lee달리


사람은 알게 모르게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는다. 원하는 것도 원치 않는 것도 모두 포함해서.

무엇보다도 그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그대로 빼다 박는 경우가 많다.

무섭고도 신기한 일이다.


나 같은 경우는 유년기에는 할머니, 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보냈고, 조금 자라서는 어머니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보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땅과 하늘만큼 다른 분들이셨다. 그래서 나는 땅과 하늘이 흔들리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자랐다. 그러나 두 분은 공통점도 많았다. 두 분 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비물질적인 세계를 중시하시는 분이었고, 먹는 즐거움의 비중은 크게 없는 분들이셨다.


시골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부모님은 가난한 아이들의 학비도 대신 내주시고 음으로 양으로 그들을 돌봐주셨다. 그 제자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찾아와 인사를 했다. 부모님께서 입으로 강조한 적이 없어도 그런 것을 보고 자란 나는 그런 것이 아름다운 가치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몸으로 체득하고 자랐다.


두 분 다 교육을 중시하셨다. 나는 우리 집이 한 번도 넉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국영수는 물론 예체능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동생은 대금을, 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오래 시키셨다. 미술은 어려서부터 학원을 보내기도 했고, 선생님을 초빙해서 부모님까지 같이 온 가족이 수업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부모님과 동생까지 모두 벚꽃이 핀 풍경화를 그렸는데 아빠의 그림이 제일 훌륭했다.(내 그림이 제일 후졌다)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이 우리 가족만의 추억이자 문화였다.


우리 집엔 아버지가 학생 때부터 모으신 삼중당 문고가 가득했고, 아버지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그 책들은 가엾게도 우리 집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었다. 노랗게 바스락거리는 가을낙엽처럼 변해버린 그 책들을 소중하게 넘기며,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 우리 집엔 50가지의 클래식 명곡들이 담긴 오래된 테이프 전집이 있었다. 폼나는 하드케이스에 들어있는 그 테이프들을 듣는 유일한 사람은 나였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G선상의 아리아를 특히 좋아했는데,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내가 직접 그걸 연주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살면서 느꼈던 어느 기쁨과도 비할 수 없는 충만한 것이었다. 우습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소소한 것으로 채워진다.


부모님은 독서와 일기 쓰기를 가장 중시하셨다. 매일 독서기록장과 일기를 쓰게 하시고, 거기에 정성스럽게 리뷰도 달아주셨으며, 독서록과 일기장이 한 권씩 마무리될 때마다 작은 파티를 열어주셨다. 한 번은 옷장 속에 감춰진 엄마의 일기장을 살짝 읽어보았다. 아빠의 이름이 “환이오빠”로 등장하는 일기였다.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일기를 쓰셨구나. 부모님이 말뿐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직접 행하는 가르침은 자식 입장에서는 어길 수가 없는 것 같다. 살면서 고3 시기를 포함해서 아무리 바쁘고 힘든 시간에도 일기 쓰기를 쉬어본 적이 없다. 아마 내 동생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로부터는 이런 세심한 가르침도 있었다. 엄마는 늘 내가 여성스럽고 예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런데 언젠가 엄마는 또 내가 철의 여인 “대처”를 닮았다고 했다.) 내가 브래지어를 하는 나이가 되자 이렇게 가르치셨다.

“절대, 절대, 브래지어랑 팬티는 세트로 입어야 한다. 짝짝이로 입으면 안 돼.”

나는 속으로 이 가르침은 따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일부러 이 가르침만은 어기고 있다. 일부러 약간 다른 패턴이나 색감을 미스매치해서 입는다. 엄마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랄까.

엄마는 예쁘고 깨끗한 옷과 좋은 냄새의 중요성도 가르치셨는데 요점은 잘 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강조하셔서 약간 반감이 들 정도였다. 혹시 누가 어릴 때 엄마를 냄새난다고 놀린 것일까? 한번 이런 의심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어릴 때 반에서 특별히 가난한 아이였다. 같은 학교 아이들이 안 입는 옷을 모아서 줄 만큼 가난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예쁜 옷 사는 걸 아직도 너무 좋아하신다. 어린 시절 “새 옷을 사는 만큼 지구가 망가진다고요!" 라고 엄마를 흉봤던 나는 어느새 엄마처럼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고, 엄마만큼 좋은 냄새를 사랑해서 향수를 사모으는 사람이 되었다.


가난하게 컸든 어떻든 간에, 엄마는 아름답고 세련된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닮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 좀 더 거칠고 동물적이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지만 나는 나무와 풀, 곤충을 좋아했다. 엄마는 서정시를 좋아했지만 나는 감정의 과잉을 싫어했다. 엄마는 예쁘고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좋아했지만 나는 어둡고 비틀린 것들에 끌렸다. 엄마는 내게 “너는 왜 그런 취향이냐?” 하고 드러내놓고 나무라신 적은 없지만 당연히 딸이 이런 사람이란 것을 알고 계셨으리라. 아마도 실망하셨겠지.


아버지는 내게 얼마큼 관심이 있으셨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아빠에게 컴퓨터 게임부터 글쓰기, 수학까지 온갖 것을 배웠다. 초등학교 때까지의 나는 거의 아버지가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술가의 영혼을 타고나셔서 안테나가 자신에게 집중되어 계셨다(나는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라 알 수 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어도 아버지의 마음은 자기 안의 다른 세계로 날아가 버린 느낌. 또 아버지는 자기가 만든 자식들보다는 지금의 나처럼 자신의 근원, 즉 자기 부모에게 몰두했다. 자신의 근원에 대한 집착은 곧 자신에 대한 집착이라고 보는데, 예술가들의 나르시시즘의 발현이 아닐까 한다.

그런 아버지께서는 나를 “속을 알 수 없는 딸”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몇 년 전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아버지께 내가 쓴 글들을 몇 개 보내드렸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데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나란 사람의 마음속을 읽는 문을 연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신기했다. 나는 이토록 투명하게 나를 내보이고 사는데, 겉에서 보기엔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구나.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이라고 하면, 나는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그저 나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심장을 가지고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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