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도 아닌 슬픔도 아닌

독서일기/새벽과 음악-이제니

by Dahl Lee달리

당신은 나를 낳았고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사라진 자리마다 가득히 찾아왔으므로

나는 엎드려서 쓰고 또 썼다

....

열매는 수직으로 움직인다고

바닥으로 떨어져서야 자유를 누리는 것이 있다고

한 걸음 뒤의 일조차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열매의 향과 색을 누리면서

....


그러니 나도 가고 있다

뒤늦게 누리면서 사랑을 울면서


여름 열매가 향하는 곳을 따라

하얗게 울리는 흘리는 또 하나의 열매로서




내가 좋아하는 이제니 시인의 <열매도 아닌 슬픔도 아닌>이라는 시. 2022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에서 처음 읽었다.



이제니 시인의 시는 흔히 어렵다고 여겨진다. 나 역시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와닿지 않는 시들도 있지만, 이 시는 달랐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한 줄 한 줄, 내 마음속 이야기를 누가 시원히 정리해서 말해주는 느낌이 들어 이상한 전율이 느껴졌다. 이 시를 반듯하게 필사도 하고, 쪼가리 종이에 끼적대기도 하고, 입으로 되뇌어 보기도 하며 어느덧 몇몇 구절은 외우게 되었다. 이 세상에 독자가 단 한 명뿐일지라도 내 작품을 이렇게까지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작가가 아닐까. 이제니 시인님, 저는 당신의 그런 독자입니다.



이 시는 이제니 시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의 마음을 쓴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여의고 난 직후의 마음이 되어 이 시를 읽었다.


나의 할머니는 말기 암으로 돌아가신 이제니 시인의 어머니보다 오래 투병하셨다. 고관절이 골절되시고 서서히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져 소천하실 때까지 대략 이 년 정도 고생하셨을까. 2024년 출간된 이제니 시인의 수필집 <새벽과 음악>으로부터 미루어 짐작해 보면, 시인의 어머니는 그 시대 어머니답게 생활고 속에서도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으신 참 좋은 어머니셨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눔의 삶을 실천하신 참 좋은 사람이셨다. 암으로 짧게 투병하셨고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를 불태우시다 임종 순간이 임박해서는 자녀들을 위해 초인적인 힘으로 기도까지 하시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께서는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셨는데, 임종 직전 그 새벽기도 하시던 시각에 자녀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이런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어찌 절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머니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임종의 순간을 미루고 싶은 욕망과, 어머니께서 덜 고통받기를 원하는 마음의 갈등 부분에서, 나는 그녀의 마음이 되어 오열하며 책을 읽었다.


시인은 어머니가 생전 좋아하시던 여름 과일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여린 내부는 알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는그 과일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또 쓸데없는 질문에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이제니 시인을 만나는 날이 오면 물어보고 싶다. (혹시 포도 아닐까.)


시인의 어머니는 크리스천이셨고, 아마도 시인도 그 영향을 받았을지도. 시의 곳곳에서 익숙한 시선이 펼쳐진다.

물질이 본성 그대로의 포물선을 그려나가듯이
열매는 다시 온전히 저 혼자 하늘로 올라간다

열매의 구체성과는 무관하게
오래 맺어왔던 이름과도 무관하게

열매는 수직으로 움직인다고
바닥으로 떨어져서야 자유를 누리는 것이 있다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시 온전한 상태로, 땅에서 가졌던 누구누구의 엄마 혹은 본인이 땅에서 가졌던 이름과는 무관한, 완전한 존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시인이 바라보는 장면같이 느껴진다.


나도 할머니 곁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세상에 태어나 온갖 풍파를 겪었던 할머니.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마음 한 켠이 평화로워졌다. 할머니께서 자신을 서서히 구부리고 마모시켰던 것들로부터 회복되어, 그러니까 '온전한' 상태가 되어, 하나님의 품으로 가서 안기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이제야 비로소 자유를 누리는 거라고. 바닥에 떨어져서야, 죽어서야, 비로소 누리는 자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참, 세상의 즐거움을 누릴 때마다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되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 때,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웃긴 농담을 들을 때, 예쁜 그림을 볼 때...


한 걸음 뒤의 일조차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열매의 향과 색을 누리면서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상실감에 오래 허전했다. 나는 할머니와 대화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뒤늦게 할머니에 대해 궁금해하고,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잊지 않으려고 그녀에 대해 쓰고 또 썼다.


당신은 나를 낳았고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사라진 자리마다 가득히 찾아왔으므로
나는 엎드려서 쓰고 또 썼다




그러나, 나 역시 천국으로 가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이제니 시인은 여기에서 '그러나'가 아니라 '그러니'라는 접속사를 썼다는 것. 그녀의 마음은 지극히 예민하고 올올히 섬세하다.


아무튼, 나도 간다.

뒤늦게 (할머니께) 받은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누리고, 울면서.

할머니가 향하셨던 바로 그곳으로.

할머니처럼 또 하나의 열매가 되어.


그러니 나도 가고 있다
뒤늦게 누리면서 사랑을 울면서

여름 열매가 향하는 곳을 따라
하얗게 울리는 흘리는 또 하나의 열매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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