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경청자

by Dahl Lee달리

미미는 앞에 앉은 남자의 눈을 바라본다. 깊게 그늘이 드리워진, 쓸쓸하고 외로운 눈이다. 오늘 처음 보는 남자지만, 미미의 눈빛은 오랜 친구를 보듯 따뜻하다. 그는 한숨을 섞어가며 지금까지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두서없이 풀어놓는 중이다.


"... 그래서 나는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로 컸던 거야. 새엄마와 이복 형이 잘 대해주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늘 술만 마시고 말수가 없어 속을 짐작할 수 없었거든. 그런 아버지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전보다 더 쓸쓸한 기분이 들었어. 친어머니를 찾아가 봤지만 전혀 어머니다운 정이 없더라고. 독사 같은 여자. 그런 여자도 있는 거지. "


"그렇지. 그런 여자도 있는 거지." 미미는 남자의 마지막 말을 받았다. "그래도 참 외롭고 쓸쓸했겠다. 어릴 적부터 부모가 없는 느낌으로 컸다니. 고아가 아닌데도 말이야. 차라리 고아인 게 나았을 뻔했어. 고아들은 최소한 자기 부모를 마음껏 상상할 기회는 있으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미미 입에서 나온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아버지의 혼외 관계에서 태어났다.친모에게 버림받고 알코올 중독인 생부 곁에서 아동학대 수준의 방치되어 자라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복 형에게 구조되다시피 데려와졌다. 그리고 이복 형의 손에 아들처럼 자랐다. 적절한 영양 공급과 올바른 훈육,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형은 따뜻했지만 남자의 마음속에는 늘 뻥 뚫린 동굴이 있었고, 그곳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형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그런데 형이 결혼해서 자기 아이들이 생기니까 내가 마음 붙일 곳이 더 없어진 느낌이야."

"그렇겠어 정말. 당신에겐 형이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을 텐데. 아버지에게 다른 자식이 생긴 기분일 것 같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식이 말이야. "

"맞아..."


남자와 미미의 대화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돈다. 남자는 처음으로 돌아가 책임감 없는 부모에 대한 원망,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신의 불운을 게워내듯 이야기한다. 미미는 주의 깊게 듣는다. 토씨 하나도 흘려듣지 않으려 노력한다. 반복하는 와중에 남자의 말과 표정은 조금씩 달라진다. 개 같은 년, 인간쓰레기 같은 새끼로 시작한 원망의 말은 표현의 수위가 차차 누그러지고, 그늘에 짓눌린 표정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하다. 이야기 끝에 남자는 마침내 눈물을 보이고, 미미도 코끝이 빨개져 같이 훌쩍이기 시작한다.


..... 둘은 이제 같이 생강라떼를 홀짝이며 어제 본 연예인 뉴스 이야기와 근처의 스파게티 맛집 이야기를 한다. 다음에는 같이 스파게티를 먹자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시간제 경청자.

이것이 미미의 일이다.

미미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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