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랑 소영이 이야기(1)

by Dahl Lee달리

새벽이의 몸은 검은 암표범같다. 마르고 탄탄한 그녀의 몸의 모든 곳에서는 에너지와 의지가 뿜어져 나온다. 종아리는 길쭉하고 단단해서, 지면을 박차고 자기가 원하는 그 어느곳에라도 빠르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보육원에서 종종 하는 달리기에서도 남자아이들을 제치고 늘 일등이다. 머리회전이 빠르고, 거기에 특유의 강한 의지로 성적도 우수하다.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는 아이. 그것이 바로 새벽이다. 누구나 새벽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소영이는 새벽이의 보육원 단짝이다.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소영이는 하얗고 투명하고 작은, 다친 새 같다. 눈썰미 좋은 사람만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소영은 아주 살짝 오른쪽 다리를 전다. 짖꿎은 보육원 아이들 중 아무도 소영이를 놀리지 않았다. 새벽이가 항상 소영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소영과 새벽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껴안고 잠드는 순간을 제일 좋아했다. 가족다운 가족을 가져본 적 없는 둘에게, 편안하고 부드러운 서로의 가슴에 기대어 잠드는 순간은 크나큰 위안이었다. 그 순간 둘에게는 슬픈 기억도, 불안한 미래도 없고 그저 그 순간 뿐이었다. 부드러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품에 파고드며 둘은 서로의 엄마가 되어주었다.


보육원에 사는걸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소영이와 새벽이는 아니었다.

새벽이가 가진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이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한결같이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술에 취하면 폭력적이 되었다. 그 폭력은 늘 주변의 가장 약한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새벽이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기미가 있으면 달려나가 어딘가에서 숨어서 다음날 아버지가 술이 깨기까지 기다렸다. 엄마는 아니었다. 바보같이 아버지 옆에서 미련하게 그 매를 다 맞고 있었다. 바보, 어린 새벽이는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새벽이는 안다. 엄마가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의 분노가 혹시라도 어린 딸을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는걸.


어느날, 엄마에게 휘둘러진 야구 방망이를 새벽이가 대신 맞았다. 새벽이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뛰어든 것이다. 기적같이 뼈는 부러지지 않았는데, 그 대신 엄마의 속에 있는 무언가가 영영 끊어져버린것 같았다. 엄마는 며칠 동안 새벽이에게 요리하는 법과 빨래하는 법,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단단히 일러준 후 영영 떠나버렸다. 엄마는 떠나기 전날 밤 자는 척 누워있는 새벽이의 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추고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마지막으로 정을 떼버리려던 것일까. 새벽이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마침내 도망가서 다행이야. 이후 아버지는 날마다 술에 빠져 살다가 어느날 돈을 벌어오겠다며 새벽이의 손에 몇만원을 쥐여준 후 돌아오지 않았다. 7살때의 일이었다. 새벽이는 전기도 물도 끊긴 그 집에서 혼자 겨울을 났다. 그러고는 그 집에서조차 쫓겨나 거리에서 혼자 1년을 살다가 보육원에 왔다.


소영이의 경우는 달랐다. 소영이는 아주 갓난아기일때 보육원에 왔다. 나중에 보육원 선생님들께 몰래 전해들은 말로는, 밤새 유흥에 빠져 노느라 바빠 기저귀도 제대로 갈아주지 않았던 소영이의 젊디 젊은 부모들은 아기의 엉덩이가 짓물러 썩어들어가는 것 조차 몰랐다고 한다. 마침내 아이의 고관절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철없는 부모들은 의사의 신고로 아이를 영영 빼앗겼다. 그 무책임한 부모들이 소영이가 지금도 미세하게 다리를 저는 이유였다.


아무튼. 둘에게는 보육원은 천국이었다. 자격없는 부모는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최고의 지옥이다. 보육원을 싫어할 수 있다니. 지옥을 겪어 보지 못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둘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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