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옆집 여자.

by Dahl Lee달리

도어록이 울리고, 삐그덕.

옆집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 소리에 맞춰 잠을 깨는 나.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들어오는군.

옆집 여자의 귀가 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 벌써 몇 달째다.



하루하루 별거 없이 살던 내가, 어느 날부터 옆집 여자를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언젠가 우연히 집 앞에서 마주친 그녀의 손에 들린 책 한 권을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꿈을 찾는 발레리나 2?

구하기 어려운 책인데. 게다가 저렇게 상태가 좋다니.

정말이었다. 어렸을 때 읽던 청소년 로맨스 소설. 절판된 그 책을 구하려고 나는 웃돈을 십만 원이나 줘야 했었다. 그 책이 옆집 여자 손에 들려있다니.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일 것이고, 나만큼 책벌레일 것이다. 구하기 어려운 책에 거금을 투척할만한.


그날 이후로 나는 얇은 벽 너머 여자의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뭘 먹고 뭘 보고 있을까.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이루리빌라. 뭘 이룬다는 것일까. 이무튼 이곳은 신축 빌라임에도 벽이 얇았다. 민소매 티를 즐겨 입고 키가 작은 그녀의 남자친구는 일주일에 두 번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10시.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하루 중 대부분이 조용한 그녀의 집에 갑자기 이질적인 소리가 나기 때문이었을 뿐. 처음엔 짜증이 났지만 딱 3분만 기다리면 되기 때문에 이제는 너그러워졌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을 생각한다. 그녀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여자는 낮에는 종일 집에 있다가 늦은 저녁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희고 포동한 둥근 얼굴, 구불구불한 긴 머리카락, 완벽하게 가꿔진 손톱. 그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백팩을 매는 여자. 그녀는 딱 달라붙는 상의에 레깅스만 입고 있을 때가 많았다. 신발은 항상 뉴발란스 운동화. 여자에게 어울리는 여러 가지 직업을 상상하다가도, 종국에는 그녀가 외출했다 돌아오는 시간대에 막혀 내 상상력은 쪼그라들곤 했다.


여느 때 같은 화요일 낮이었다. 갑자기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소리가 들렸지만 한 번도 싸우는 소리인적은 없었는데. 벽이 얇았음에도 뭐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정확한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다. 고성이 오가고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더 무서운 정적. 옆집 여자가 걱정돼서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가 문을 열었다. 역시나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누구세요?

옆집 사람인데요, 누가 다쳤나 해서요.

괜찮아요. 다친 사람 없어요.


남자의 어깨너머로 삐죽 뻗은 그녀의 희고 흰 다리 일부가 보였다. 그녀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미동 없이.

얼굴 쪽은 보이지 않았다.


죄송한데요, 경찰에 신고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의료인이라서요. 신고 의무가 있거든요.

괜찮다니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남자가 옆집 여자에게 다가가서 몸을 흔들었다.

여자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간신히. 그제서야 여자의 전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팔꿈치가 탈구된 것 같은데요.

얘가 원래 잘 이래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대요.


옆집 여자는 정신이 나간 얼굴이었다.

내가 가끔 상상했던 그 얼굴.

이런 상황에서는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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