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장선거
서준이는 반에서 흥민이와 가장 친하다. 흥민이는 축구를 아주 잘한다. 흥민이와 같은 편이 되면 언제나 이긴다. 체육시간은 서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줄넘기를 다 한 친구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는 체육 선생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쌩쌩 신나게 줄을 돌린다.
서준이와 흥민이는 호흡이 잘 맞는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나면 상대편 골키퍼는 주저앉고 만다. 서준이와 흥민이의 골 세리머니는 벌써 여러 개다. 오늘도 서준이네 팀이 3:1로 이겼다. 땀범벅이 되어서 교실로 들어간다. 개학하고 처음 하는 축구라 더 재밌었다.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는데 현지네 무리가 뭉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나가야 하는데 길을 막고 비켜 줄 생각이 없다. 현지를 좋아하는 서준이는 비켜달라고 말을 못 하고 멀뚱히 서서 어쩔 줄 모른다. 마침 들어오던 흥민이가 한 마디 하지 않았으면 서준이는 그 자리에 기둥처럼 언제까지고 서 있었을 것이다.
“야, 너네가 교실 전세 냈냐? 비켜.” 흥민이가 한마디 하자 현지네 무리는 일제히 흥민이를 쏘아본다. 서준이는 깜짝 놀라 모르는 척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께서 다음 주 월요일에 2학기 반장 부반장 선거한다고 내일까지 하고 싶은 사람은 지원하라고 하셨다. 서준이는 선생님 심부름을 다 하는 반장 같은 건 누가 하냐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 순간, 옆 분단에 앉은 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 부반장 해볼까?” 그러자 옆에 앉은 지영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한다.
“부반장? 그런 거 하면 힘든데 하려고?”
“응,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런데 은서도 부반장 한다고 하던데. 넌 나 뽑아줄 거지?”
“당연하지. 근데 반장은 누가 할까?”
“글세, 반장이 누가 되든 엄청 친해지겠다.” 현지가 웃으며 말한다.
서준이는 마치 현지가 자기를 보고 웃으며 반장을 같이 하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귀찮고 힘들기만 한 그 반장을 내가 해주겠어.’
“엄마, 아빠, 나 반장 선거에 나갈래.” 서준이의 말에 엄마 아빠는 당황한다.
“반장 안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왜 반장이 하고 싶어 졌어?” 엄마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엄마, 나는 봉사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야. 몰랐어? 3학년 5반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어.” 제법 비장한 표정이다. “어차피 하기로 했으면 연설문이랑 잘 분비해서 반장 해 봐.” 아빠는 반장을 해보겠다는 서준이가 기특해서 내심 기분이 좋다.
다음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공부도 잘하고 발표도 잘하는 선빈이가 반장 후보로 등록했다.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되겠군.’ 서준이는 아무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 들었어? 선빈이도 반장 선거에 나간대. 아무래도 그 녀석 현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 흥민이가 슬쩍 다가와 귀띔해 주었다. ‘아, 뭐하나 쉽게 되는 것이 없구나.’ 서준이는 답답했다.
“어떻게 해야 선빈이를 이길 수 있을까?”
“짜식, 내가 누구냐. 내가 나서서 안 되는 게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 서준이의 입이 바짝 마른다.
“여자 애들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아침 독서 시간에 연예인 뮤직비디오 틀어준다고 하고, 남자 애들한테는 체육시간마다 축구를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연설하는 거야. 어때? 죽이지?”
“이런 연설은 하면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까? 지키지도 못 할 공약을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아, 몰라. 다음 주 월요일이니까. 생각 좀 해볼래.”
“내 말을 들어야 한다니까.” 답답한 흥민이는 가슴을 친다.
주말 저녁 식사 후 서준이는 엄마 아빠 미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미소는 손을 번쩍 들고 이야기한다.
“오빠, 흰 우유 대신 쵸코 우유 준다고 해. 그러면 다 오빠 찍을 거야. 우리 선생님은 제티도 가져오면 안 된대. 난 쵸코 우유가 좋은데. 쵸코 우유로 바꿔 준다고 하면 나는 무조건 투표할 거야.”
“서준이는 어떤 반장이 되고 싶은데? 서준이가 반장이 되고 싶은 이유를 솔직히 말하면 친구들이 투표해 주지 않을까?” 아빠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현지가 부반장 한다고 해서 현지 따라 반장 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해요.’ 이렇게 말할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서준이가 되고 싶은 반장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다시 생각해봐. 짧아도 좋으니까. 서준이 생각을 친구들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엄마가 읽던 책을 덮으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되고 싶은 반장?’ 서준이는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기호 1번 박서준입니다.
제가 반장이 된다면 선생님을 잘 돕겠습니다.
3학년 5반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여러분들과 즐겁고 행복한 3학년 5반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를 뽑아주십시오. "
치사하게 거짓말을 해서 반장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연예인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고 체육시간마다 축구를 하고 흰 우유 대신 쵸코 우유를 먹으면 정말 좋겠지만 이것들은 서준이가 지킬 수 없는 공약이었다. 거짓 공약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어 반장이 되어서 희진이와 친해지는 것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정정당당하게 공약을 하느냐는 치킨과 피자 중 고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월요일 아침.
단정한 옷을 입고 머리에 물을 발라 깔끔하게 빗고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거울을 보며 연설문을 읽어 본다. 짧은 연설문이지만 벌써부터 떨린다. 콩나물 국에 밥 한 그릇 후다닥 말아먹고 미소 손을 잡고 학교에 간다. 미소를 반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미소가 불러 세운다.
“오빠, 잘하고 와. 울 오빠 파이팅!!” 미소의 응원에 서준이는 힘이 난다.
“오빠가 반장 되면 이따가 떡볶이 사줄게.” 서준이는 미소에게 손을 흔들며 교실로 향한다.
선생님이 후보들을 칠판에 적으셨다.
반장 후보 1번 박서준 2번 김선빈
부반장 후보 1번 이희진 2번 이은서
서준이는 아침에 화장실에서 연습한 대로 또박또박 힘을 주어 읽었다. 흥민이는 큰 소리고 응원하며 박수를 쳤다. 서준이의 공약에 큰 호응은 없었지만 서준이 마음은 가벼웠다. 가짜 연설을 하지 않길 잘한 것 같다.
평소에 조용하고 모범생이었던 선빈이의 연설문이 이어지자 아이들은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호 2번 김선빈입니다.
제가 3학년 5반 반장이 된다면
우리 반에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하겠습니다.
그리고 반 소풍 때 모두에게 콜팝을 쏘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꼭 반장으로 뽑아주십시오.”
아이들은 교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서준이는 고개를 떨구며 반장이 되긴 틀린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연설이 끝나고 투표를 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를 때마다 서준이 심장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어차피 선빈이가 반장이 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기대를 해본다. 서준이 이름이 불릴 때마다 흥민이는 “앗싸”를 외친다. 누가 보면 흥민이가 서준인 줄 알겠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15:13. 2표 차로 서준이가 반장이 되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서준이는 간신히 참았다. “우냐? 거봐. 내가 뭐랬어? 형님 말을 들으면 된다고 했지?” 흥민이가 어깨를 툭친다.
서준이는 선생님을 열심히 도와 즐겁고 행복한 3학년 5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자신과 약속한다. 그리고 가짜 공약이 없어도 반장이 될 수 있다고 미소에게 말해줘야겠다. 기분이다. 오늘은 미소에게 컵 떡볶이 두 개 사줘야겠다.
오늘은 하늘도 높고, 바람도 시원하고, 부반장이 된 현지도 더 예뻐 보인다.
엄마 아빠, 나 반장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