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절기상 가장 덥다는 하지. 나는 그렇게 더운 날 아빠도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빠는 군대도 가기 전에 나부터 만들었다. 엄마는 뱃속에 나를 품고 시댁에 들어와 남편도 없이 시댁 식구들 눈치를 보며 소리도 한 번 크게 지르지 못하고 나를 낳았다. 그때 이를 꽉 물고 참아서 이가 다 망가졌다고 푸념을 하신다. 할머니는 딸을 넷이나 낳아 키우셨으면서도 며느리에게 고된 시집살이를 시키셨다. 엄마의 입장을 고려해서 순하고 얌전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까칠하고 예민했다. 아무에게나 안기지도 않았고 밤이 되면 더 크게 울어댔다. 엄마는 점점 야위어갔고 엄마의 고됨을 알턱이 없는 나의 까칠함은 더욱 심해졌다. 참 야속한 딸이다.
학교에 입학하고 알게 된 것은 집에서 부리던 성질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자존감이 낮았는지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컸다. 모든 친구들이 다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선생님들도 나를 예뻐해 주셨으면 좋겠고 심지어는 슈퍼 아줌마도 나를 예뻐해 주길 원했다. 내가 가진 까칠함과 예민함을 집 밖에서는 표현하면 안 된다는 것을 눈치로 깨달았다. 원래 내 모습을 보고 나면 모두가 날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싫어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에 맞장구치며 그 상황을 넘기곤 했다.
집 밖에 나가면 언제나 날을 세워야 했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싶었던 나는 늘 웃어야 했고 어떤 말에도 신나게 대구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싫어요 나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요.’ ‘아니, 난 이거 먹을래.’ ‘저번에 그거 했으니까 이번에는 이거 하자.’ ‘나는 공포 영화 안 좋아해.’ ‘그게 정말 예쁘니? 내 눈엔 별로인데.’ 마음속으로는 이런 말들이 불끈불끈 튀어나오지만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나를 숨기며 살아온 것이다.
시간이 지마면 무뎌질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4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까칠하고 예민하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성격 갖고 나를 속이며 사는 삶이 점점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진짜 내 옆에 있을 사람이라면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그들은 내 옆에 있을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없듯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먹는 동안 내 안에는 여러 가지 근육이 생겼다. 남들을 이해할 수 있는 근육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근육도 누군가의 못마땅한 시선을 웃어넘길 수 있는 근육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분간할 수 있는 근육도 길렀다. 더 이상 누군가의 사랑에 마음 상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만 있지는 않을 나이가 된 것이다.
신기하게 마흔이 되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생긴다. 선 긋듯 딱 정확이 1월 1일이 되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즈음이 되면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중 하나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자신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끼워 맞추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 시작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까칠하고 예민함으로 대부분의 삶을 살고 가끔은 자기 동굴을 파고 들어가 소심하게 웅크린 내성적인 사람이기도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조증 환자처럼 해피 해피한 생기발랄한 외향적인 사람이되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한 없이 우울했다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는 신이 나서 재잘댄다. 내 감정 기복은 주식 그래프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어설픈 연기로 성격을 고쳐보려는 노력 대신 마흔이 넘어서며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착하지 않아도, 예쁘지 않아도 여전히 내 옆에 있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면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 에너지를 이제는 나를 위해 쓴다. 내가 나를 아끼고 예뻐하고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 어설픈 연기 하느라 바짝 긴장하고 고됐던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흔의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