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면 덜 힘들지
힘든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내 그림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예전보다 우울증이 호전된 지금, 옛날에 아주 우울증이 심했을 때 그린 어떤 그림들을 보면 스스로 그림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힘들고 아픈 그림들도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집에 걸어놓을 예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누군가는 말하기도 하지만, 마냥 밝은 그림은 나에게 그렇게 많은 위로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만난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들 역시 마냥 긍정적이며 밝은 위로는 그렇게 많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내가 겪는 감정은 모른 채, ‘힘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비난하지 않고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감지덕지이지만 ‘힘내’ 말도 때론 힘들 때가 있다. 힘이 안 나는데 어떻게 힘이 나지? 위로를 수박 겉핧기식으로 한다.
사실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 중에 그렇게 많이 악한 사람들을 못 봤다. 너무 착해서 탈이난 사람들이다. 남들처럼 ‘너 때문이야.’라고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가하지도 않으며, 바보같이 그 탓을 ‘나’에게로 돌려 나를 벌주고 괴롭히면서 시작된 사람들이 많다.
우울증을 겪은 사람에게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감정의 배설이다. ‘나 힘들어요.’ ‘살려주세요.’라고 말이라도 하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사람이 많다. 힘든데 힘든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 못 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또 삽질을 시작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벌을 주며 스스로를 지하 100층에 파묻기 시작한다. 내가 그린 그림들은 어떻게 힘들다고 말하는지 모를 때 그려낸 그림이다. 누군가에는 칙칙하고 어두워서 피하고 싶은 그림일 수도 있지만, 그 그림을 바깥으로 꺼내놓으며 현재 조금이나마 성장한 내가 글을 함께 덭잎이는 작업은, 스스로 ‘나 힘들었어’라고 독백을 시작하며, 정체불명의 회색 감정에 정확하게 이름표를 달아주며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나아가 힘들다고 티 내는 것도 꺼려하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공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말로 안된다면 그림으로 하는 1차적으로 하는 감정의 배설은 나를 돌보는 일의 첫걸음마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에 너무나도 서툴렀던 한 사람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내적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과정은 힘들었던 과정 과정에 쓸모없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스스로 등을 토닥이는 일이며 그리고 누군가에게 깊은 공감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쓸모 있어질 것 같은 생각이고, 이 역시 ‘무가치감’을 겪는 우울증 극복에 대한 사람의 노력이다. 내가 모든 사람을 구하지는 못하겠지만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한 사람에게 이 글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함께 겪고 있어요.”
개의 집단에 홀로 있는 개양이 같기도, 고양이의 집단에 있는 이상한 개양이도 했던, 어떤 집단에 있어도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던 내가, 스스로의 고유성을 인정하기까지의 여정에서, 그 시작을 알리는 첫 독백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하다.
Jessie Jihyun Lee, 나는 개인가 고양이인가? 아마도 개양이? 2(Am I a cat or a dog?.. Maybe Catog2)), Acrylic on canvas, 73cm x 91cm,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