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처음 진단받다.
우울증은 지하 10층, 100층에 있는데 계속 땅 밑으로 삽질을 하는 상태다. 우울증 (depression)은 우울감과 활동력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적 상태로,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에 변화가 생겨 끊임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난다. 양상은 다양하나, 우울한 기분, 의욕·관심·정신활동의 저하, 초조 (번민), 식욕 저하 또는 증가, 수면의 증가 또는 감소, 불안감 등을 수반한다. 대인관계, 스트레스, 경제적 문제 등의 원인이 있는 일시적인 우울감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그 정도, 기간 등이 비정상적이라면 병리적인 상태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흔히들 우울증을 생각하면, ‘나 우울증 있어요.’라고 얼굴에 써붙이고 다닐 것 같은 암울한 몽타주를 상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당신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누군가도, 우울증을 겪고 있을 수 있다.
내가 우울증 양상을 보였던 때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그리고 처음 정식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은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방문했고, 정신과에서는 적당한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권장했다. 처음으로 정식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도드라지게 나타났던 주변인과의 갈등이 이유 없는 일이 아니었구나, 라는 일차적 안도감에 이어, 망했다,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막막함이 함께 몰려왔다.
의사는 우울증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타난 이유를 후천적인 성장 배경과 선천적인 뇌하수체의 호르몬 체계 이상, 세로토닌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이다. 내 우울증이 선천적인 세로토닌 이상 때문만이라면, 내 머리를 열고 내 뇌하수체를 꺼내 걸레 짜듯이 꼭꼭 짜서 호르몬이 잘 나오도록 하고 싶었다.
우울증은 밀물과 썰물처럼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심해질 때도, 무언가를 할 의지를 조금 남겨둘 정도로 무난할 정도로 오고 가곤 한다. 무언가를 할 의지가 조금이라도 생기는 썰물인 상태가 되면, 식물처럼 광합성을 자주 해보라고 권장했던 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햇볕을 쬐면서, 정신적 식물인간에서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이 되던,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인간이 되던 둘 중에 하나는 하게 해 달라고 해님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해님은 쉽사리 나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으나,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 뭉근하고 불쾌한 감정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내면 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아, 그 이후로 더욱 그림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