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성인(成人)이 된다. 우리는 성인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든 엄마 뱃속에서 나와 세상에서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기 시작한 기간이 20년이 지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미성년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고 해서, 혹은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성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정말 공평하게 시간의 축적을 근거로 자격을 부여한다.
성인이 되면 기존에 누리지 못했던 많은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술, 담배 등 다소 중독성이 내재된 기호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든가, 부모의 동의 없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하루 밤 사이에 급격한 권리 확대가 이뤄진다. 물론 확대 대상은 권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누릴 수 있는 권리가 확대됨에 따라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본인의 몫이 된다. 일례로 흡연을 하기로 선택했다면 건강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과도한 음주 뒤에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숙취는 누가 대신 견뎌주지 않는다.
이처럼 하루 밤 차이로 이뤄지는 신분의 변화는 20년 동안 부모와 사회의 보호 시스템 안에서 누렸던 안락함을 지워내고, 독립된 개체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제한을 해제하며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성인으로서의 덕목을 갖추라고 요구한다. 물론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성인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인의 자격 요건은 시간의 축적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다 큰 성인이 왜 저럴까’라고 탄식하게 되는 상황을 목도한다. 출퇴근 시간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에서 자신의 성급함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에게 배려 없이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성인의 자격이 주어졌다고 해서 모두가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가르침을 준다. 어른은 시간의 축적과 함께 숙성의 농도에 따라 만들어진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대중이 기대하는 어른은 외형적 조건이나 역할의 목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중이 기대하는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개인적으로 어른이란 시대의 아픔과 정신을 자신의 성품에 반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성세대의 잘못과 미완의 과제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 탓을 하기 위한 직면이 아니라, 책임을 끌어안기 위한 직면이다. 또한 시대정신에 걸맞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새로운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익숙한 방식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며 변화의 바람을 맞아들이는 일은 결코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감정의 확장, 사고의 확장, 존재의 확장이 함께 요구되는 일종의 수행에 가깝다.
모든 것을 초월한 채 관조적 시선을 견지한 사람이 어른이 아니라, 불어오는 강풍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흔들릴 수는 있어도 쓰러지지 않고 주변의 피해를 돌아보는 사람이야말로 어른인 것이다. 혹자는 너무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물론 어른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인(聖人)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성인(聖人)이란 어떤 존재일까? 성인은 어른보다도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존재로 여겨진다. 성인이라는 호칭에는 시대를 넘어 보편적 지혜와 덕성을 상징하는 힘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어를 너무 가볍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의 행동이 유독 고결해 보이면 ‘성인 같네’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성인은 단순한 선행을 반복한다고 해서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개인의 품성과 능력을 뛰어넘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윤리적 기준을 몸소 구현해 내는 사람이다. 어른이 시대의 아픔을 성품에 반영한 사람이라면, 성인은 그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우리가 성인(成人)에 안주하거나 성인(聖人)을 지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어른이 주류를 이루면 지금보다 더 안온해지리라 확신한다. 최소한의 용기와 유연함을 갖춘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일군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라, 자기 시대와 사람들을 위해 미완의 자신을 조금씩 다듬어가는 어른이다. 그런 어른 한 사람이 품은 무게가 때로는 성인(聖人) 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