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핑계

by 이호빈

이따금 나의 잘못으로 난감한 상황이 생길 때면 핑계 대지 않으려고 애쓴다. 잘못된 언행의 원인과 당위성을 주장하고 싶은 욕구가 턱 끝까지 차오를 때도 있지만 구태여 입을 열기보다 고개를 숙이려 노력하는 편이다. 평소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자주 핑계 대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신 덕에 직장생활 같은 공적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핑계 대지 않고 책임지는 자세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것 같다.


문제는 사적 영역이겠다.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못남이 드러날 때 평소 핑계 대지 말자는 결심을 자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변호하는 내 모습을 자주 본다. 어째서 핑계 대는 일은 가까운 관계, 소중한 존재에게 더 쉬운 것일까? 가까운 이들에게만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마음이 은근하게 깔려 있기 때문일까. 어느 책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가까운 관계일수록 자신과 타자를 동일시한다는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다. 자신에게 관대하기 쉬운 사람의 본성이 자신과 동일시된 타자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12월이 되자 본격적으로 송년회 일정이 잡히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한 골목에서 깡통차기, 술래잡기 등을 하며 함께 땀 흘렸던 동네 친구들부터,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질 거라고 겁박당하던 시기를 함께 보낸 고등학교 동창들, 어쩌면 가장 철없던 시절을 함께 보낸 대학 동기들까지,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늘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이의 관계들이 연말이란 이유로, 송년회를 핑계로 시간을 내고 달력을 채운다.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핑계될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더 많이 웃기 위해,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기 위해, 그리고 함께 시간을 내어 마주 앉기 위해, 좋은 핑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좋겠다. 겨울바람은 우리의 몸을 시립게 만들지만 더욱 가까이 붙어 있을 핑계가 되어 주기도 하는 것처럼, 바쁜 일상은 서로에게 소원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 들게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