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만 나이가 법정 나이로 공식화되면서, 서른이 되는 시기를 잠시 미룰 수 있었다. 그렇게 유예된 시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2주가 지나면 만으로도 서른이다. 말 그대로 ‘진짜 서른’이 되는 셈이다.
기자 간담회나 미팅에 참석하면 대부분 막내일 때가 많으니 서른이라는 나이는 아직 어른이라 불리기 이른 시기인 듯하다. 대학교를 비교적 늦게 진학한 편이라 동기들이 전부 동생들이고, 대학교 졸업 후 자주 보는 친구들이 대학교 친구들이다 보니 자연스레 최고참 대우가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나는 영락없는 막내였다. 그 사실이 새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새삼 체감할 때가 있다. 체력이 예전과 같이 않다거나, 새로운 정서를 마주한 경험이 적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진정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싶다. 요즘은 거울을 마주할 때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보일 때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음을 느낀다. 아버지와 나는 지독하게 닮았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 매번 아버지를 이야기하곤 했다. 아버지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감수해야만 했던 고통과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 채 늘 호탕함으로 가족을 대하는 분이다. 아버지의 가족 사랑은 인류를 위해 대신하여 죽음을 받아들였던 예수의 사랑을 닮아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무흠결한 사람은 아니다. 실수도 많이 하시고 가끔 이해가지 않을 행동을 하실 때도 있다. 그중 하나가 답답하면 목소리의 톤을 높이는 점이다.
아버지의 많은 부분을 닮으려고 애쓰면서 답답하면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는 습관은 닮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와 대화 중 아버지가 답답해서 톤을 높일 때면 아버지의 의도와 달리 나는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는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말을 느리게 하려고 노력한다. 말을 느리게 함과 동시에 말의 고저를 신경 쓰고 명확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단어를 생각해 에둘러 표현하려고 애쓴다.
나는 느리기 말하기와 같은 삶의 작은 부분들을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경제적 이득과 연결되지 않으면 어떠한 가치도 평가절하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은 타인과 깊이 관계하며 살아가는 삶을 욕망하며 추구하기 마련이고, 나는 그러한 삶이 경제적 이득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삶보다 풍요로우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느리게 말하는 연습을 한다. 말의 속도를 늦추는 일은, 어쩌면 관계를 존중하겠다는 나름의 다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