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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그램 Sep 18. 2023

진짜 햇살이 된 나의 딸에게.


서윤아, 안녕. 엄마야. 우리 딸, 오늘 하루는 어땠니?      


5월의 둘째 날이었던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햇살이 참 눈부시더라. 새순이 잔뜩 올라온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는데 문득 우리 서윤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어.      


벌써 네가 엄마 곁을 떠난 지 8년이 되었다. 너를 처음 만났던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참 무심히도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우리 서윤이가 기억할지 모르겠다. 


임신이란 걸 알았을 때 너의 태명을 햇살이로 지었지. 네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거든. 너는 엄마에게 어두운 밤을 지나 이른 아침의 햇살처럼 다가왔단다. 그런데 우리 햇살이가 혼자 온 게 아니었더라. 햇님이의 손을 잡고 온 것이었어. 세상에…. 내가 쌍둥이를 품게 된다니…. 얼마나 신기하고 기쁘고 설렜는지 모를 거야. 하루하루, 한주씩 채워갈 때마다 우리 햇살이와 햇님이가 엄마의 우주를 채웠지,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었는데 너희들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햇살이가 아프다는 걸 조금 많이 늦게 알게 되었어. 쌍둥이 임신은 원래 쉽지 않고 출산까지 어려운 길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내 얘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힘든 시기를 지나면 건강하게 만나게 될 거라고 믿었는데 우리 햇살이가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아프다는 걸 아주 큰 병원에 가서 확인하게 된 거야.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다른 집의 쌍둥이들은 건강하게만 태어나던데 왜 우리 햇살이는 이렇게 아파야 할까? 하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 함께 자라고 있던 햇님이를 품어주느라 임신 기간 내내 동생을 받쳐주며 아래에서 그렇게 너는 살아내고 있었다.      


절망적인 순간이 수없이 이어지고 가장 후회할 결정을 해야 했지.      


35주 4일, 햇살이와 햇님이를 품었던 그 시간. 잊을 수가 없구나. 햇살이와 햇님이를 만나러 가던 날. 네가 세상에 나오면 3시간을 살지 3일을 살지 기약할 수 없다고 했어. 그래도 내 안에서 숨을 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너를 엄마는 기쁜 맘으로 기다렸단다. 그토록 한없이 슬프게 기쁜 적이 없었지.      




햇살이가 먼저 나오고 1분 뒤에 햇님이가 태어났다. 기쁘고 슬펐다. 그리고 살아낸 너의 모습에 놀라움도 더했었지. 햇살이와 햇님이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어. 너무 작고 너무 여린 너는 만질 수조차 없었어. 길어야 3일이라고 했지만 너는 정확하게 23일이라는 시간을 이 지구에 머물렀단다.      


매일 오전, 오후 면회 시간마다 엄마는 너희들을 만나러 갔어. 죽을 만큼 아팠지만 엄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너희들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엄마가 가장 슬펐던 날이 언제인지 아니?     


네가 엄마 곁은 떠난 순간보다 더 슬펐던 순간은 너를 병원에 남겨두고 햇님이와 함께 집으로 퇴원을 하던 날이었어. 그 미어지던 마음을 어떻게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너의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보다 슬퍼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도 참 서글프더라. 그 그늘에 있던 햇님이는 축하보다 위로를 더 많이 받았지. 그런 시간을 생각보다 오래 보냈어.     


집에서 햇님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서도 엄마의 맘의 반은 너에게 가 있었어. 네가 언제 엄마를 떠날지 몰라 애태우던 날이 하루하루 더해가고 결국 그날이 와버리더라. 

    

2015년 9월 18일. 우리 서윤이가 정말 하늘의 햇살이 되던 날.     

 

그날은 엄마에게 짙은 회색으로 남아있어. 하필이면 비도 참 많이 왔었단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명 유지 장치에 둘러싸여 있어서 맨얼굴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 깨끗하게 목욕하고 테이프 하나 없는 뽀얀 우리 서윤이를 만났지. 자그마한 얼굴에 오밀조밀 예쁜 이목구비. 우리 서윤이가 이렇게나 예뻤구나. 정말 너무너무 예뻤구나…. 1.3kg으로 태어났는데 그새 자라 2kg이 된 네가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럽던지. 깊은 잠을 빠진 우리 서윤이를 그때, 사진 한 장 못 남겨놓은 게 후회가 된다.    

  

너를 위해 직접 지었던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손 싸개, 발싸개를 해주고 보드라운 속싸개로 너를 감싸 안으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그 경계 어디쯤인지…. 한참을 너를 안고 울었다.    

  

그렇게 조그마한 너의 몸도 재가 남더라. 병원에만 머무느라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집도 들러보고 언니랑 오빠가 뛰어놀던 놀이터도 가보았지. 할머니가 사는 시골 마을도 돌아보고 엄마가 어렸을 때 뛰어놀았던 그 바닷가에서 너와 진짜 이별을 했다. 그 바다에 네가 흩어지는데 그 바닷물이 엄마의 눈물이었다.     




 

내 아가, 내 딸, 나에게 햇살이었던 우리 서윤아. 엄마는 여전히 너를 그리워해. 서율이를 볼 때면 우리 서윤이도 이런 모습이었을 거라고 상상을 해. 정말 햇살처럼 반짝이는 공주님이었을 거야.      


엄마는 서진이, 서연이, 서윤이, 서율이의 엄마니까 이곳에서 엄마가 해야 할 일 다 끝내고 나면 서윤을 만나러 갈 거야. 그래서 엄마는 죽음이 두렵지 않단다. 엄마에겐 또 다른 삶의 시작일 테니까. 함께 하지 못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너와 보낼 거야.      


오늘은 너를 기억하는 특별한 하루였다. 엄마의 삶의 순간은 네가 머무는 이 우주 안에서 흘러가.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 내 딸, 서윤아, 우리 꼭 다시 만나. 그때까지 엄마의 가슴 깊은 곳에서 머물러줘. 내 모든 호흡에 머물러주길 바라. 


사랑해, 서윤아. 




23년 9월 18일.


오늘은 우리 서윤이의 8번째 기일이다. 이맘때가 되면 몸도 마음도 참 무거워진다. 괜히 눈물이 나고 멍하게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내가 너의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윤이가 살아가고 있을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엄마의 상상력을 더해보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인지, 단순한 그리움의 감정인지. 34주 5일을 품었던 어미로서의 본능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네가 그립고 아프다.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에 쉼표를 찍게 해주는 오늘, 엄마는 너를 충분히 그리고 하고 슬퍼해야겠다. 


서윤아, 입 밖으로 내어보는 우리 딸 이름이 1년에 몇 번이나 될까.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되뇌지만 너의 이름을 꺼내는 일이 아직도 쉽지 않다. 아마도 엄마가 우리 서윤이 곁으로 갈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오늘을 보내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9번째, 10번째 기일이 올 테지.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 다행이기도 하다. 


시간을 더한 만큼 짙어질 너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엄마는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생을 마치고 가야 할 저 너머에 네가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너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던 그날의 오늘. 

따뜻한 온기와 보드라운 볼살이 닿았던 그 촉감을, 엄마는 문신처럼 기억해.

배넷저고리와 속싸개, 모자까지 쓰고 고이 잠든 너의 모습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니. 이렇게 추억할 선물을 주고 가서 고맙다.  


사랑한다, 내 딸 서윤아. 

정말 많이 보고 싶다. 다시 한번 너를 품에 안아봤으면 좋겠다. 그럴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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