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영화] 분노의 포도(1945)

-예외적 소수의 어리석은 우직함

by leesy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믿는다. 경제적 궁핍은 사람을 각박하게 만든다. 나와 내 가족의 배를 우선 채우는 것은 지상과제다. 그 이후에야 다른 사람의 처지도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이 쓰인다.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마주하더라도 내 곳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도움의 손길을 선뜻 내밀기 힘들다. 사람은 그런 동물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소수만이 이 법칙의 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궁핍은 사람을 근시안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원인을 찾기 힘들게 한다. 모든 문제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이고 복잡한 해법을 요한다. 하지만 당장 하루의 노동이 하루의 끼니만을 담보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들은 문제의 대증요법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두고 그들의 게으름을 문제 삼기도 한다. 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이야말로 편협한 시각으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외적 소수들은 궁핍한 상황에서도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들은 자신의 배고픔은 물론 가족의 안위에 위험이 되는 상황을 감수한다.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비난받기 쉽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관점에선 도저히 납득 불가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1939)>를 원작으로 한 존 포드 감독의 동명 영화 <분노의 포도(1945)>를 통해 곳간이 바닥난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여러 유형의 행동들을 관찰해볼 수 있다.



#극의 시대 배경은 대공황이 휩쓸고 간 직후의 미국이다. 1920년대 경제적으로 최대 호황기를 누리던 미국은 1930년대 들어 대공황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치솟기만 하던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 대륙에는 또 하나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포의 더스트 볼(Dust bowl)이다. 극심한 가뭄과 거대한 먼지더미를 동반한 폭풍이 미 남부의 곡창지대를 뒤덮었다. 그중에서도 오클라호마는 그 피해가 막심했다. 영화는 이곳을 무대로 펼쳐진다.


#살해사건에 휘말린 톰 조드는 4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톰은 폐허가 된 마을과 텅 빈 집을 마주하고 망연자실한다. 톰은 가족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곳은 톰의 집안이 터를 잡고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의 가족과 마을 주민들은 더스트 볼이라는 자연재해와 더불어 거대 자본에 의해 도망가듯 각자의 집을 떠나야만 했다. 자연재해로 수확량이 줄어들자 서류 몇 장이 배달됐고 마을 사람들은 집안 대대로 일궈온 땅에서 주인 행세 한번 못해보고 떠나야 했다. 모든 일은 체계화된 법에 따라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몇몇 사람들은 떠나길 거부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땅이란 단순히 사고팔 수 있는 재화 혹은 생산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삶의 요람이자 무덤이며 한 세대와 다음 세대의 연결고리였다. 그러나 거대 자본과 맞물려 돌아가는 법의 체계가 구축한 공적 영역에서 그러한 사적 감상은 무용하다. 공적 영역에 사적 감상이 침범하는 순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퍽 잔인하다.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이웃이 트랙터를 몰고 자신의 이웃집으로 돌진하기도 한다. 이웃은 말한다. “나도 어쩔 수 없어 내 코가 석자라고!” 집주인은 도리가 없다. 아내와 아이 둘, 장모님을 부양하는 가장에게 3달러는 이웃의 집을 파괴할 대가로 충분하다.



#톰은 숙부의 집으로 향한다. 좁은 집에서 부모와 조부모, 어린 동생까지 10명이 모여 살고 있다. 조부모는 치매를 앓고 있고 어린 동생들은 천진난만할 뿐이다. 하지만 이곳도 곧 비워야 한다. 어느 기업의 대리인이란 사람이 집의 철거를 알린다. 그에게 호소해봐야 소용없다. 그도 시키는 일을 하고 봉급을 받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탓이다. 서류가 효력을 발휘하는 공적 영역에서 사적 감정은 힘이 없다.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작성된 서류만 힘을 발휘할 뿐이다.



#톰은 10명의 가족과 자신을 도와준 떠돌이 전직 목사 톰 케이시와 함께 허름한 트럭에 몸을 싣는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일자리다. 그들은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800명의 인부를 구한다는 전단지 한 장에 의지한 대장정이다. 고물 트럭에 빼곡한 살림살이와 함께 들어찬 인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지만 톰이 만나는 건 자신들의 처지만도 못한 사람들이다.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하는 아이들과,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가장 그리고 신산한 삶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는 노인들이다.



#힘겹게 도착한 캘리포니아에서 톰 일행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수천 명의 사람들과 마주한다. 농장주가 800명의 인부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수천 장의 전단지를 뿌린 결과다. 인부가 몰릴수록 인건비는 낮아진다. 잔인한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그마저도 할 사람이 넘치는 탓에 톰 일행은 다시 발길을 돌린다. 톰은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한다. 하지만 부조리를 끊을 방법은 알 수 없다. 당장 곳간을 채워야 하고 톰은 다시 고물 트럭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다시 입소문에 의지해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톰 일행은 우연한 계기로 복숭아 농장에 들어선다. 번호에 따라 다닥다닥 붙은 오두막에 보금자리를 얻는다. 복숭아 바구니 당 5센트로 적은 돈이지만 온 가족이 매달리면 굶지 않을 수 있다. 톰은 오랜만에 맛보는 고기에 만족감을 느끼지만 농장 앞에 벌어지던 소요가 눈에 아른거린다. 톰은 감시를 피해 그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여정 중에 헤어진 떠돌이 전 목사 케이시와 조우한다. 말 많은 케이시는 파업이란 것의 선봉에 서 있었다.



#케이시는 톰에게 말한다. “난 더 이상 목사로 돌아갈 수 없어. 어떤 게 옳은지 알아야겠어” 하지만 케이시는 파업을 분쇄하려는 농장 측에 의해 살해당한다. 케이시 같이 좋은 사람이 왜 죽어야만 하는가, 케이시가 싸워서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굶주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의 결실은 어디로 향하는가. 톰은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죽은 케이시의 길을 따라서 가보기로 한다. 여전히 곳간을 채우지 못한 톰이 예외적 소수가 되는 순간이다.



#톰의 어머니의 말처럼 명확한 삶의 방식이 사라진 시대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 톰이 찾고자 하는 부조리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자연재해일 수도 있고 국가의 무능과 자본가의 탐욕 혹은 인간 본성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외적 소수로서 톰에게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 문제가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톰의 문제의식이 절대다수의 텅 빈 곳간을 채울 단서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건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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