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00] 백신양극화

- 코로나19가 까발린 지구촌(村)의 민낯

by leesy

교과서대로 말하기는 쉽지만 교과서처럼 살기는 어렵다. 현실과 당위는 매번 충돌하는데, 그때마다 현실이 당위를 압도할 때가 더 많은 게 세상일이다. 이런 경향은 국제 관계에서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자 얼마 없던 당위마저 맥없이 스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이 백신 민족주의다. 힘의 논리에 따른 백신 공급량이 국가 별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을 미리 예상한 각국 정상들은 백신 공급의 형평성을 제고하고자 코벡스 퍼실리티라는 공동 분배 프로젝트를 조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마련한 당위는 현실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자유ㆍ평등ㆍ인권의 당위를 천명해온 서구의 선진국들은 내국인 우선주의를 내걸고 백신 확보 전에 뛰어들었다. 백신 공급력을 갖춘 몇 국가는 내국인 백신 접종 완료 때까지 백신의 국외 방출을 차단하고 나섰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게임 체인저로 여겨지는 백신 공급은 자본과 기술을 가진 소수 국가에만 한정된 형국이다. 그동안 치료제도 의료시설도 부족한 빈국들은 늘어나는 확진자를 감당하지 못해 속수무책 상태에 놓여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보건기구를 비롯한 구호단체의 외침은 공허하게 맴돌 뿐이다.


백신 곳간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니만큼 11월 집단 면역 달성이라는 국내 백신 접종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당장 2% 남짓한 접종률을 끌어올릴 백신 수급 방법이 마땅치 않다. 방역 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에 더해 위탁 생산 백신 확보에 나선다고 하지만 민족주의에 더해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백신 공급 시장에서 위탁 생산 협상이 원활히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위기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백신 민족주의와 자국민 우선주의는 국가차원의 자기보존 욕구다.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백신 여권을 도입하고 있다. 그간 멈춰있던 관광을 재개해 경제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보존 욕구는 백신 여권이 이런저런 이유로 접종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대 의견을 한가한 당위 타령으로 격하한다.


당분간은 현실이 당위를 압도하는 기간이 지속될 성싶다. 코로나19가 까발린 지구촌(村)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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