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01] 정교분리

- 현실에 발을 딛은 신념

by leesy

한나 아렌트의 말마따나 믿고 싶은 게 있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발을 떼기 십상이다. 신념이 강한 이들일수록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서툴다. 현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을 신념은 어느새 현실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 된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그래서 중요하다. 가장 강력한 신념인 종교는 복잡다단한 현실 정치를 담아내기엔 너무나 성긴 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긴 그물은 종교만이 아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신념으로 정치를 하는 이들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다. 자기확신이 강한 이들은 자신만의 지식을 절대진리로 여긴다. 상전벽해가 예삿일이 아닌 시대에도 한 세기 전 지식을 들고 와 경제 정책을 설계하고 사회 현상을 진단한다. 종교화된 그들의 신념은 현실을 해석하는 유일한 관점이 된다.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현실의 사례가 존재해도 아랑곳 않는다. 신념과 현실의 간극을 매울 갖은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주도하는 정치란 정교일치 하의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이 잘 굴러가면 신의 말씀에 따라서이고, 현실이 어지러우면 신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이다. 마찬가지로 경제가 어려운 건 시장의 법칙을 경시했기 때문이고, 경제가 좋은 건 시장의 법칙에 충실한 덕이다.


이처럼 정답이 있다고 굳게 믿는 이들은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동화되기 힘들다.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모여 얽히고설키며 상호 간 접점을 찾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 협상의 과정은 탁상공론에 불과한데, 이미 정해진 답을 두고 변죽만 울리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에 빠지기 쉬운 요즘 실질적인 정교분리의 원칙이 깨질 위험은 더욱 높아졌다. 정치적 양극화로 발생한 혼란은 종교 갈등과 유사하게 펼쳐진다. 같은 시대와 공간을 공유하지만 현실 진단은 극과 극이다. 한번 똬리를 튼 신념은 쉽게 꺾이지 않아서 갈등의 해소도 요원하기만 하다.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상대를 대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각자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현실은 왜곡된다.


실직적인 정교분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의 신념이 종교처럼 작동하고 있진 않은지 의심해봐야 한다. 정교일치 국가를 정치 후진국으로 여기는 한국에서 자신의 신념에 경각심을 갖기 위한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 바탕을 둔 신념을 세워야 한다. 현실이 변하면 신념도 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신념이 정치적으로 유효한 건 오직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을 때뿐이니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문연습100] 백신양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