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전하고 절대적인 질서는 없다
큰정부가 돌아왔다. 로널드 레이건 이래로 쪼그라들었던 미국 정부의 역할이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다시 팽창하고 있다. 기존의 작은 정부가 위기 대처에 서툴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천문학적인 재정 지원책을 동원해 정부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나섰다. 미국의 주도 하에서 국제질서가 움직이니만큼 바이든 정부의 큰정부 기조는 곧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가 큰정부의 회귀를 촉구하긴 했지만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이미 삐걱대고 있었다.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국제질서로 삼았다. 이에 순응한 각국 정부들은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본에 많은 것을 위임했다. 체제 경쟁 상대가 없어진 상태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진국들은 국제질서를 독점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전개된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자유주의의 확산은 인류 미래에 대한 낙관론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류의 발전이 끝단에 이르렀다며 역사의 종말까지 얘기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끝단에 이른 건 인류의 발전이 아닌 정지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체제경쟁이 사라진 국제질서는 신자유주의만이 유일한 진리인 양 작동했고, 커지는 자본의 힘에 비해 국가의 기능은 계속 축소됐다. 트럼프 당선과 유럽 선진국의 극우 정당 약진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오늘날 국제질서에 급격히 편입된 우리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시장 양극화로 사람의 가치는 낮아졌고, 경제적 불평등으로 사회적 불만은 높아졌다.
체제경쟁이 사라지자 없는 이들 간의 경쟁은 더욱 심각해진 양상이다. 그런 점에서 큰정부 회귀에 중국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의 국제질서를 위협할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 셈이니 말이다. 패권을 유지하고 싶은 미국은 다시 경쟁 모드에 돌입했고, 기존 질서에서 발생한 불평등, 환경오염 등 국제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기존 국제질서의 개선을 기다릴지 새로운 체제를 따를지는 각국의 선택에 달렸다. 전략에 따라 둘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질서는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도, 기업도, 국가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적당한 경쟁이 필요하다면. 국제질서 또한 예외가 될 순 없다. 국제질서를 장악할 수 없는 대다수 국가들은 자기들 형편에 맞는 질서를 따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