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04] 잠

- 해가 지지 않는 지구

by leesy

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는 뭘까.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된 바는 아직 없다고 한다. 잠을 적게 자면 하루 종일 피곤하고 잠을 오랜 시간 자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니 살기 위해 잠을 잔다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닐 테다. 하지만 살기 위해 잠을 자야만 하는 인간은 살기 위해 잠을 거부하기도 한다. 노동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만큼 현대인은 덜 자고 더 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현대 문명은 인간의 신체와 조화되지 못하고 있다. 20만 년 간 수렵ㆍ채집 생활을 하며 진화해온 호모 사피엔스는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잤다. 달빛에 의존하고 잠과 사투한들 삶의 질이 더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오늘날 기계문명은 전구 발명 한 세기만에 해가 지지 않는 지구를 이룩했다. 꺼지지 않는 불빛은 잠을 거부하며 노동할 토양이 됐다.


1970년대 여공들은 타이밍이란 각성제를 먹어가며 밤낮없이 일을 했다. 약물까지 써가며 잠을 거부하고, 강한 노동을 감내했던 동력은 낮은 임금이었다.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지탱할 수 없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기계문명의 시초 격인 농업혁명을 ‘사기’로 규정한 바 있다. 농사를 시작하며 인류의 생산성을 높아졌지만 더 많은 노동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러한 구조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하루가 머다 하고 들려오는 과로사의 원인은 대부분 충분한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먹고살려고 잠을 줄여가며 일해야 했던 이들이 과로사의 위기에 놓여있다. 구조적 모순이 낳은 비극이지만 구조를 고치려는 시도는 너무 쉽게 좌절된다. ‘사상 최대 매출’ ‘역대급 투자’ ‘새벽 배송 혁신’ 따위의 구호만 나부낄 뿐이다. 그 옛날 타이밍을 먹으며 일했던 여공들의 곤궁함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비극을 막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잠을 더 자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총알배송과 새벽배송 같은 구호 뒤에 가려진 이들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말마따나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면, 과로사도 사회적 타살이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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