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서 묘지로의 환승
#블랑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동생 스텔라가 있는 뉴올리언즈에 도착한다. 동생의 집에 도착한 블랑쉬는 당황한다. 항상 부유하게 지내온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블랑쉬에게 선택권은 없다. 방 사이에 제대로 된 벽도 없는 집에서 블랑쉬, 스텔라, 그리고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의 동거가 시작된다.
#블랑쉬는 동생 스텔라를 끔찍이 아낀다. 그만큼 스탠리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 블랑쉬는 스텔라가 사는 집과 그녀의 남편 모두 스텔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스탠리는 블랑쉬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껄렁이는 모습으로 술을 들이켜는가 하면 땀에 젖은 옷을 아무렇지 않게 갈아입는다. 귀족적 정취를 풍기는 블랑쉬에게 스탠리의 언행은 못 배운 사람의 전형이다. 블랑쉬는 계속해서 스텔라에게 주변 환경과 남편 스탠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스탠리에게도 블랑쉬는 반가운 대상이 아니다. 부유하게 살 동안은 한 번도 보이지 않다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서야 짐이 되어 나타났다. 신혼 분위기를 깨는 것도 모자라 자기 취향대로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려 하는 모습도 마땅찮다. 게다가 잘 지내고 있던 부부 사이를 훼방 놓으려고까지 하니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평생을‘기름때 묻은’ 인생을 살아온 스탠리에게 블랑쉬는 자기 앞가림도 할 줄 모르는 천덕꾸러기에 불과하다. 스탠리는 그런 블랑쉬를 하루빨리 내보내고 싶다.
#스텔라는 그런 두 인물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 블랑쉬가 반갑지만 스탠리의 반응이 우려된다. 블랑쉬는 스텔라에게 찬란했던 과거를 되찾아야 한다며 이곳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스텔라는 그 말에 혹하면서도 스탠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다. 블랑쉬를 재산을 다 탕진한 거짓말쟁이라고 여기는 스탠리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하나뿐인 형제인 블랑쉬를 내칠 수 없다. 스텔라는 그 둘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지만 그가 노력할수록 둘의 갈등은 더욱 격화한다.
가장 희소한 자원, 사랑
#사랑이야말로 가장 희소한 자원이다. 모두가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아무나 사랑받을 수는 없다. 인류애 혹은 가족애와 같은 종류의 사랑은 비교적 넉넉한 자원이다. 그러나 개인 간의 사랑은 다르다. 어떤 이는 동시에 여럿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한 사람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사랑은 아무에게나 줄 수 없는 귀한 자원이다. 이것이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이자 인간이 사랑받기 위해 투쟁하는 이유이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이다. 가장 희소한 자원인 사랑을 두고 벌이는 인간군상의 모습.
#사랑하는 일은 사랑받는 일보다 비교적 쉽다. 사랑할 대상만 나타나면 사랑을 주면 될 일이다. 혹자는 사랑할 대상이 쉽게 나타나지 않음을 이야기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 사랑을 줄 사람을 찾는 일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바라는 대상이 날 사랑할 가능성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받기 위해 저마다의 도구를 활용한다. 누군가는 재력을 과시하고 누군가는 미모를 뽐내고 누군가는 온갖 정성으로 다른 이의 마음에 들어가고자 한다.
블랑쉬의 도구, 아름다움
# 영화 속 세 인물들도 다르지 않다. 블랑쉬에게 사랑받기 위한 도구란 아름다움이다. 그는 남자들이 여자의 아름다움에 약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여자의 아름다움만이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블랑쉬는 아름답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름답기란 쉽지 않다. 단지 외모만 아름다운 것을 넘어 말투와 손짓 하나하나 모두가 품위를 갖추기 위해 존재한다.
#그럼에도 역시 아름다움을 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것은 외모다. 블랑쉬는 외모를 가꾸는 일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 집안의 재산을 지키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 보이지만 커다란 가방 안에는 온갖 장식품과 값비싼 옷들이 가득하다. 오히려 치장하느라 재산을 탕진한 것 같은 추측을 일으킬 정도다. 그는 없는 살림의 동생네서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을 차지하고 매일같이 뜨거운 물에 몸을 씻는다. 고가의 향수로 몸을 덮고 품위 있는 옷을 걸친 후에는 누군가로부터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블랑쉬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세월이다. 그는 30살을 마지노선으로 여긴다. 이미 30대를 훌쩍 넘긴 듯 보이지만 나이를 숨기고자 노력한다. 되도록 밝은 곳에 가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옅게 만든다. 스스로를 노처녀라고 자조하면서도 그에 대한 상대방의 부정을 기대한다.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른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타인과의 관계는 왜곡된다.
스탠리의 도구, 남성성
#반면에 스탠리에게 블랑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허영과 같다. 실속이 없다. 스탠리가 사랑받기 위해 택한 도구는 남성성이다. 그는 남자다워짐으로써 사랑을 얻고자 한다. 잘생긴 외모와 근육질 몸매는 그의 남성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러나 스탠리를 더욱 남자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사상이다. 긍정적 측면이든 부정적 측면이든 그를 진정 남자로 만드는 것은 그의 마초적인 성향이다.
#군대를 갓 제대한 스탠리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자가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에 자부심을 보인다. 제대 후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근육’을 사용하는 일에 종사한다. 그에게 육체노동은 가족을 부양하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는 최적의 노동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민자이며 하층민에 속하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럴수록 스탠리는 열등감을 가리기 위해 더욱 남성성을 드러낸다.
#그에 따라 스탠리는 오래전에 끝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루이지애나에 있었을 법한 ‘나폴레옹 법전’을 들먹이며 가부장제를 옹호한다. 또한 존재도 확실하지 않은 잘 나가는 친구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영향력 과시한다. 이것이 스탠리가 사랑받기 위해 하는 노력이다. 남성성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가 선택한 방법이다.
스텔라의 도구, 순종
#둘에 비해 스텔라는 한없이 순종적이다. 스텔라는 지루한 삶이 싫어 상류층의 삶을 포기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자랐지만 스탠리를 따라 뉴올리언즈로 왔다. 때로 울분에 차올라 스탠리에게 윽박을 지르다가도 결국 스탠리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스텔라에게 순종적인 삶이 불행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스탠리의 사랑은 순종적인 삶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블랑쉬의 등장은 스텔라를 혼란스럽게 한다. 가난하지만 순종하는 삶 속에서 받는 사랑이 만족스럽다고 여겼던 스텔라에게 블랑쉬는 현실을 직시하게끔 한다. 블랑쉬는 주변 환경의 열악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여전히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스텔라는 블랑쉬에 말에 혹하지만 현재의 삶을 버릴 수 없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가장 안정적인 사랑을 보장해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묘지(cemetery)라는 이름의 전차
#결국 이 세 인물이 욕망하는 대상은 ‘사랑’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이 방식들은 단지 영화 속 세 인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1950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랑을 욕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양상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첫 장면에서 블랑쉬가 뉴올리언즈로 오는 과정은 과도한 욕망의 말로를 예견하는 것 같다. 블랑쉬는‘욕망(desire)’이라는 전차를 타고 묘지(cemetery)로 갈아타야만 했다. 그리고 사랑받고자 사용했던 각자의 도구들은 결국 무기가 되어 자신들을 향하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명저 자유론에서 ‘욕망’을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본다. 또한 욕망이 개인을 더 강하고 특별한 인간으로 존재하게끔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서도 유효하다. 사랑받고자 하는 사람은 생기가 넘친다. 그리고 특별해지고 싶어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그러했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렇다. 또한 과한 욕망의 말로는 언제나 파국이라는 사실도 영화와 현실이 다르지 않다.
#인간의 욕망에 한계란 없다. 그것이 문제다. 밀은 좋지 못한 결과가 강한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한 양심에 있다고 말한다. 충분한 양심이 사랑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견제할 수단이 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사랑이 희소한 자원으로 남아있는 한 인간의 욕망은 제어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모두는 이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있을지 모른다. 언제는 ‘묘지’로 갈아 탈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