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06] 여성징병제

- 구조적 변화를 포용할 수 있는 군복무제가 무엇인지

by leesy

제도도 사람처럼 늙는다. 사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제도는 현실의 변화에 따라서 노화의 과정을 겪는다. 과거에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요즘 제도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현행 징병제도만은 70년째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이어져왔으니 사람으로 치면 천수를 누린 셈이다. 그 때문인지 현실과 현행 징병제가 충동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한국의 군 복무제도는 남성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다. 헌법은 국방의 의무를 국민 모두에게 부과하지만, 오랜 시간 군대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폭력을 다루는 군대의 특성상 힘이 더 강한 생물학적 남성만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10년 헌법재판소가 남성 징병제에 합헌 판결을 내린 이유도 ‘신체적 차이’ 때문이었다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 풍토는 군 복무의 강제성을 정당화했다. ‘남자니까’ 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21세기 들어 성평등 인식이 제고되면서 현행 징병제는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게 됐다. 남자라서 누려왔던 사회적 지위가 해체되기 시작하자 남자라서 져야 했던 사회적 의무에도 물음표가 던져졌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중심이었던 조직들도 여성에게 문을 열었고, 여성이라고 못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하지 않겠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4.7 보궐선거 이후 여성 징병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20대 남녀의 투표 성향이 확연히 갈리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다수가 20대인 남성만을 징집하는 현행 징병제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언제나처럼 여성 징병제가 주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행 징병제가 남성에 대한 차별이고 문제가 있다는 데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신체적 차이를 이유로 현행 징병제를 정당화한 헌재의 판결에 대한 비판도 오랜 시간 제기돼왔다.


하지만 그 공감의 결과가 도돌이표처럼 다시 여성 징병으로 회귀해도 괜찮을지는 의문이다. 여성 징병제만으로 70년간 누적된 병폐가 일소에 해소되고 제도와 현실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기에는 인구구조의 변화와 시민의식 함양에 미치는 못하는 군인 처우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겪는 구조적 변화는 매우 다층적이다. 변화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면, 다음 질문은 여성 징병제에 대한 찬반을 묻는 닫힌질문이 아니라 사회ㆍ구조적 변화를 포용할 수 있는 군복무제가 무엇인지 묻는 열린질문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젠더 갈등을 토양으로 성장을 꾀하는 기성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애써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 유불리를 따지려 든다. 동시대를 통과하는 20대 남녀에게는 분열의 소재로 삼으려는 차이보다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의 과제가 더 많다. 다음 재선이 목표인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과제를 해결할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심층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을까. 열린질문으로 제도의 변화를 고민하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현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문연습105] 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