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10] 생리휴가

- 경제력 세계 10위 국가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by leesy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도 못한 게 인간의 심리라지만 생리통을 대하는 뭇사람들의 인식은 지나치게 옹졸할 때가 있다. 대법원이 25일 대기업 전직 대표에게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200만 원 벌금형을 확정했다. 이 전직 대표는 여직원 15명이 낸 138건의 생리휴가를 받아주지 않았는데, 여직원들이 생리 기간을 증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초경 이후 매달 겪는 생리통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여직원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생리휴가는 달에 1일 사용 가능한 무급휴가다. 1953년 유급휴가로 처음 도입됐다가 2003년 지금의 형식으로 바뀌었지만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휴가는 아니다. 생리통에 대한 박한 인식과 아파서 쉬는 게 남에게 업무를 전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일터의 문화가 적극적인 생리휴가의 사용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남성 역차별의 사례로 생리휴가제가 소개되는 일도 잦다.


생리휴가제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주장의 이유로 생리휴가제를 주말에 붙여 쓰는 관행을 지적한다. 생리통의 특성상 편의에 따라 제도를 악용하는 여성도 있을 터다. 하지만 회사라는 평판 사회에서 주변 시선을 아랑곳 않고 생리휴가를 주말의 연장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대다수는 정말 필요할 때도 눈치 보며 고민하는 게 현실이다. 일부 부작용을 이유로 생리휴가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잊을만하면 생리휴가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굳이 ‘생리’휴가제를 운영해야 하는 미비한 제도 때문이다. 아프면 병가를 내면 될 일이지만 현행 법률은 병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생리통이 심한 여성들을 위해서 생리휴가를 따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세간의 인식처럼 한국과 일본 등을 제외한 OECD 대다수 국가에 생리휴가제가 없는 이유는 그 나라들에선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부족한 사회적 연대감에 있을지 모른다. 생리통을 호소하는 여성을 친한 이웃 정도로만 여겨도 생리를 증명해보라는 야속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막연한 불신이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악용해서 자신의 일을 남에게 전가한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그런 와중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남녀를 대결 구도로 끌고 가니 사회적 연대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당장에 사회적 연대감을 조일 수 없다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눈치 보며 생리휴가제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아프면 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를 지나며 우리 사회는 쉴 권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경제력 세계 10위 국가는 아픈 사람 좀 쉬게 한다고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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