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감이 턱밑까지 차올라야 반응하는 국제 사회
전염병 앞에 장사 없다. 적절한 방역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국가들은 여지없이 감염 확산에 직면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확산세가 더딘 국가들에 대한 사회ㆍ문화적 관심이 쏟아지던 적이 있었다. 일본어는 말할 때 침이 덜 튀기 때문에 비말 감염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거나, 한국인이 먹는 김치가 면역력을 높여준다거나, 중남미의 뜨거운 태양이 살균에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 국가도 확산세를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완전식품으로 추앙받던 카레의 방역 효과도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인도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30만 명을 웃돌고 있다. 전 세계 신규 확진자의 3분의 1 수준이다. PCR 검사 수가 높지 않은 현지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확진자 수는 훨씬 많으리라 예상된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신규 확진자 수가 감소하면서 각국은 코로나19 극복의 희망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13억 명이 모여 사는 인도에서 확산되는 감염자는 2차, 3차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인도발 변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될 경우 백신의 효능은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애써 만든 백신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하자 각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경 분쟁 중인 파키스탄을 비롯해 유럽 국가에서 인도에 방역ㆍ치료에 필요한 인력과 용품을 지원키로 했다. 그간 백신 원료 수출을 제한했던 미국은 인도에 수출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위기감이 턱밑까지 차올라야 반응하는 국제 사회의 모습이 씁쓸하지만 다행인 결정이다. 카레마저 코로나19 저지에 실패한 이상 백신은 유일한 해결책이 됐다. 그러나 백신 이기주의는 여전히 공고하다. 각국이 자국민에게 백신을 우선 접종하는 방침은 이해할 만하지만, 특허권의 일시적 유예는 검토해 볼 만한 사안이었다. 이마저도 기업의 이윤 논리에 막힌 모양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신 수출과 특허권 유예를 허용하지 않는 곳이 인권의 수호자를 자임해온 서방 국가들이라는 사실이 눈에 띈다. 감염병에 속수무책인 개도국 시민들을 구하기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냉혹한 외교의 섭리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순간이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서방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권위주의 국가라 비판하는 중국은 백신 외교를 펼치며 국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더는 김치와 일본어, 카레가 코로나19 감염을 억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백신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데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급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여야 함은 당연하다. 중국 내륙 도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간 이유에는 각국의 안이한 대처도 한몫했다. 자국 이기주의 속에서 변죽만 울리다간 인도발 2차, 3차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도 먼 얘기만은 아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