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12] 기록

- 세상을 보는 창에 어떤 색이 덧씌워졌나 살피는 노력

by leesy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이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직접 경험은 축소하는 대신 간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욱 다양한 세계를 읽고 시청하고 청취할 수 있게 됐다. 집 밖을 돌아다니지 않고도 손바닥만 한 기기로 세상과 만난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관을 확장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한나 아렌트의 말마따나 우리는 믿고 싶은 게 있으면 현실의 경험에서 발을 뗀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우리가 갖고 있던 믿음을 강화할 간접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본래 믿음마저 바꿀 힘이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기록은 넓고 다양한 세상에 대한 반영이 아니다. 연대보다 분열, 공감보다 차별, 빈자보다 부자의 관점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1인 미디어가 대세라곤 하지만 여전히 기성 언론이 기록 생산과 유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자처한다. 그렇다고 그 창이 투명한 건 아니다. 역사를 읽기 전에 역사가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역사학자 E.H 카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창밖으로 세상을 보기 전, 창에 어떤 색이 덧씌워졌는지 살펴야 한다. 중립과 공정을 강조하는 언론사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많은 갈등은 이해충돌에서 기인한다. 각기 다른 이해가 부딪히고 타협하는 과정이 민주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이다. 언론사도 이해관계를 다툰다. 그럼에도 마치 이해관계에 달관한 존재처럼 공정의 탈을 쓰고 기록을 전파한다. 대체로 힘 좀 쓰는 소수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기록하는데, 그들의 이해가 마치 다수의 이해인 듯 세상을 인식하는 언론 또한 많다. 그 기록을 본 이들은 자신의 입장보다 기득권의 시각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 결과 벼락거지같은 천박한 신조어가 미디어를 가득 채운다. 사회적 관심과 자원이 영끌과 빚투에 몰린다. 벼락거지를 면하기 위해 어떻게든 집을 사고, 주식을 사고, 암호화폐를 사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당연하게 다뤄진다. 벼락거지를 얘기하는 언론의 기준에 따르면 진작 ‘거지’ 상태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의 곤궁함은 애써 외면받고, 기록되지 않는다.


이들이 처지야말로 사회 시스템의 허점을 깨닫게 하는 생생한 현실이다. 하지만 주류 미디어가 제공하는 세계관에서 그들은 투명인간이다. 어떤 기록을 보고,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지는 개인의 자유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세상을 보는 창에 어떤 색이 덧씌워졌나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은연중에 기록을 생산한 이의 세계관이 나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대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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