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자원화
성공적인 국내 코로나 방역의 비결을 김치에서 찾으려는 시도처럼 한때 한국인의 높은 지적능력의 근원을 젓가락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매일 세끼 섬세한 젓가락질을 반복하니 손재주가 좋아지고 총명해진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등지에서 젓가락 문화권에 속하는 아시아인들의 지적 성취를 고려하면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는 가설이었다. 많은 이들이 젓가락 문화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젓가락질이 지능까지 높일 리는 만무하다.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 불리는 유대인은 젓가락 문화권이 아니다. 한국인이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인다면 이유는 그 일을 열심히 해서다. 코로나 방역의 성과가 김치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었듯 한국인의 수학 실력은 젓가락이 아니라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이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하버드의 ‘공붓벌레’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학습에 투자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10시간 이상을 학업에 매진한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프롬 문화는 꿈에서나 가능하다. 힘겹게 공부해서 입시에 성공하더라도 다시 책상 앞이다. 입사 시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수준 높은 제조 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업무 강도에서 기인한다. 젓가락 사용 여부가 아닌 절대 시간의 차이가 한국인 특별하게 만드는 셈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나’가 돼야 한다. 어릴 때부터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 ‘가진 것은 사람뿐인 나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을 해야만 쓸만한 인적자원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잉여인간 취급을 받아야 하니 주어진 환경에서 뭐든 붙잡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1992년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인적 자원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많은 나라들이 인적 자원론에 따라 교육과 직업훈련으로 사람을 자원삼아 경제를 불려 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인간마저 자원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결과로 독일에선 20세기 최악의 단어로 인적자원을 선정했다.
자성의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교육인적자원부’를 운영하며 석유를 대체할 인간 자원을 채굴 중이었다. 한국인의 탁월함을 고작 젓가락질에서 찾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소모품 혹은 잉여인간 취급을 피하지 못했다. 2008년 해체된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재 교육부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자원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