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14] 빨래

- 문명이 자초한 딜레마

by leesy

빨래의 핵심은 건조다. 세탁물을 어떻게 건조했느냐가 빨래의 성패를 가른다. 적절한 햇볕과 통풍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공해가 가득한 대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난망한 조건인데, 한여름 습한 날이면 건조의 어려움은 배가한다. 건조기가 혁명적 발명품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다. 날씨와 공간에 상관없이 세탁물을 말려주기 때문이다. 건조기를 사용해본 이들은 하나같이 삶의 질이 상승했다고 말한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인간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은 없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도구가 점차 정교 해지는 과정이 곧 문명 발전으로 전개됐다. 환경오염은 문명 발전에 따른 부산물이다. 다른 생물이 환경오염에 속절없이 스러질 때조차 인간은 도구를 정교화하며 환경오염을 우회했다. 그중 하나가 건조기인 셈이다.


문명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증상에 대처하는 것에 익숙하다.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선 문명의 발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해 걱정 없이 쨍쨍한 햇볕 아래에 빨래를 널기 위해서 도시는 해체되고 공장은 멈춰야 한다. 그 대신 우리는 건조기를 발명했고 도심 한가운데서도 보송보송한 세탁물 즐긴다. 건조기 작동에 필요한 많은 양의 전기가 환경에 부담이 되는 것은 감내할 만하니 말이다.


이런 식의 땜질이 일상화된 문명에 경종을 울린 건 코로나19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전부터 전염병 창궐의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문명이 잠시 멈추자 사람들은 문명의 역사를 톺아보기 시작했다. 세계는 대증요법에 그쳤던 환경오염 대응방식을 원인요법으로 선회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낙관론자들은 기술 발전이 환경오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미래다. 그때까진 에너지를 아끼고,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문명이 발전해온 방식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과연 지난 300년 간 복잡한 도구를 만들어, 삶의 편의를 증진하고 환경오염을 우회했던 인류는 지금의 문명을 포기할 수 있을까. 환경오염을 저지하는 일이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윤리와 정치의 문제인 이유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공해와 기후위기를 우회할 기술은 활발히 사용될 것이다. 당장 올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길고 더 더워진다고 한다. 더위와 습도를 피하기 위한 건조기와 에어컨 판매량도 덩달아 늘어날 전망이다. 그만큼 환경은 오염될 터다. 환경과 편의를 모두 가질 순 없다. 인류 문명이 자초한 딜레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문연습113] 문자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