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위로 여겨지던 것들의 해체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가 가족과 가정하면 응당 떠올리곤 했던 이미지가 수명을 다한 양상이다. 미성숙한 미혼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완성하는 일명 '정상가족'은 이제 보편성을 잃었다.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6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달라진 인식은 정상가족 해체 흐름에 쐐기를 박았다.
전통적 가족상이 아직 공고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가족 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했다. 생애주기에 따라 부여되는 역할은 달라졌다. 모두가 엄마·아빠 되기를 당연하게 여겼다. 자식을 낳고, 자식의 결혼까지 책임졌다. 이러한 삶의 궤도를 충실히 따르지 않는 이들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처럼 취급됐다. 한부모 가정이거나 자식을 낳지 않아도 비정상가족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정상가족을 꾸리고, 유지하기까진 많은 행운과 인내가 필요하다. 우선 부모가 각각 온존한 집안에서 자라야 한다. 행여나 성소수자이거나 비혼 취향을 가져선 안된다. 경력 단절을 감내해야 하고, 부부끼리 겸상하기 싫을 정도로 사이가 벌어져도 아이를 위해서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시절, 모두 당위로 여겨졌던 것들이다.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도시화와 개인화는 이미 한 세대 전부터 정상가족 유지의 난이도를 한 차원 높여놨다. 낡은 당위에 따를 수 없거나 따르길 거부한 이들은 진작부터 가족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을 대수롭지 않게 다뤄왔다. 그러다가, 비정상가족으로 여겨지던 1·2인 가구의 수가 급증하고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이 증가하자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증가한 것이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4차 건강가족기본계획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가족 가치관의 변화를 수용하고 다양성·보편성·성평등의 관점에서 모든 가족을 포용하고 안정적 생활 여건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모 가수의 상속권 갈등으로 제기됐던 부모의 부양 의무도 제도화한다는 방침이다. 부모라서 혹은 자식이라서 당연하게 누려왔던 권리나 져야 했던 책임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 현실의 많은 이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제도의 변화가 가져올 혼란은 크지 않을 터다. 그간 정상가족이라는 틀 안에 사람들을 묶어두려 했던 낡은 제도를 손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법은 늘 현실보다 늦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번엔 너무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