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119] 자격

- 미래의 비용을 아끼기 위한 과정이다

by leesy

최근 경제계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ment) 경영이 큰 화두다. 세계 1,2위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뱅가드는 이미 기업의 ESG경영을 투자 지표로 삼고 있다. 영업실적에 더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양극화의 심화로 경제 생태계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기업 윤리는 선택이 아닌 성장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 한국전력이 블랙록으로부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 투자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를 요구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사청문회는 정치판 ESG 검증이다. 공직자의 실력과 별개로 공직 윤리를 따지는 이 과정은 노무현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국민들이 마음 놓고 공직 후보자에게 공적 자원의 배분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자격시험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실력과 윤리를 겸비한 사람이 고위직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외려 인사청문회장은 기득권층의 치부를 공개하는 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위장전입·논문표절·부동산투기는 고위공직에 임명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비친다. 한국 사회에서 저 정도 위치에 오르기 위해선 이 같은 잘못쯤은 저지를 수밖에 없나, 하는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잘못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우리의 관행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비윤리적·부도덕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추궁받은 적 없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우선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 사회를 <꺼삐딴 리> 사회로 인식하는 누군가는 이 땅에서 출세하기 위해선 기회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원리·원칙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반칙하는 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반칙에 대한 페널티가 없으니 책임 부담도 없다. 지난 정권 민주주의 원칙을 져버리고 국정을 제멋대로 주물렀던 이들에게 책임을 묻자 돌아오는 말은 반칙이 용인되는 사회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적폐 청산하다가 나라 망한다" "이제는 사면할 때" 상황이 이러하니 힘 꽤나 쓰는 이들은 반칙에 더욱 거리낌이 없다.


인사청문회 후보자의 불법과 편법이 매국행위와 국정농단에 비할 바는 아닐 터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마다 반복되는 풍경은 잘못을 처벌받지 않는 사회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이번 주 국회에서 진행된 장과 인사청문회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대다수 시민들은 오직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만 접하는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추궁이 어김없이 반복됐고, 후보자들은 고개를 조아렸다.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잘못을 추궁하는 청문회 과정이 부담스러워 능력 있는 사람들이 공직을 기피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공직 사회를 '꺼삐딴 리'류의 기회주의자로 채워도 좋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확장이다. 인사청문회는 ESG경영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비용을 아끼기 위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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