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문연습120] 비정규직

- 시험의 결과는 공정의 지표

by leesy

의자 뺏기 사회다. 한정된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모두가 달려든다. 10개뿐인 의자를 두고 15명이 경쟁하면 5명은 아무리 노력해도 낙오할 수밖에 없다. 한 명이 하나의 의자를 차지하는 경우라면 외려 양호하다. 때때로 누군가는 두세 개의 의자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의자 뺏기가 우리 사회의 자원 배분방식으로 공고하게 자리 잡은 양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화는 의자의 수를 더하려는 시도였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공공부문에서 시작한 정규직화가 민간부문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이어졌다. 주요 공약이었던 만큼 대통령은 2017년 출범 3일 만에 인천공항 비정규직 직원들을 만나 공약 이행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예상밖에 암초에 부딪혔다. 공공기관 입사 준비생과 이미 입사한 정규직 직원들의 반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규직 자리는 정당하게 시험을 쳐서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했던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불만도 쏟아졌다. 정규직화가 의자를 뺏는 게 아니라 의자를 더하는 조치라는 정부의 해명은 통하지 않았다.


인생의 주요 분기마다 시험을 거쳐야 했던 청년들에게 시험의 결과는 공정의 지표였다. 정규직 자리를 얻기 위해 시험을 열심히 준비한 이들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공정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험을 준비할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진 않는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인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은 이미 업무에 숙달된 상태이고, 기존의 정규직 정원을 채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험을 요구하는 주장은 비정규직은 앞으로도 의자에 앉을 수 없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해온 방안의 코끼리 같은 존재였던 과정의 공정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사립초등학교 학생들이 일주일 평균 4.2일 등교할 때 공립초 학생들은 1.9일에 그쳤다. 사립초 학비는 매년 천만 원에 육박한다.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증폭한다. 가정 형편이 입시와 입사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자명한데, 시험만으로 공정을 확보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의자 뺏기에 몰두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사회적 유대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1000대 1의 경쟁률이 자랑거리가 되는 시대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모두를 제치고 의자 뺏기에 성공한 1인의 노력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사회적 관심은 낙오한 999명에게 향해야 한다. 이들을 위한 공정은 어디에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문연습119] 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