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성 정치인은 상실했던 대표성
정치인의 행보는 드라마에 비견된다. 예상 밖의 전개와 극적 장치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된다. 정치인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이 내용이라면, 외적 효소는 형식에 가깝다. 그 점에서 보수 야당의 신임 대표로 당선된 정치인 이준석의 드라마는 형식면에서 전례 없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30대 유력 야당 대표의 등장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의 면면을 보면 '대의'란 말이 무색해진다. 21대 국회의원의 8할은 남성이다. 50대 이상이 또 80% 이상이고, 대졸자는 100%다. 주기적으로 공시되는 의원들의 자산 규모는 일반 대중과 정치인들의 삶의 괴리감을 표상한다. 이들이 과연 우리들의 무엇을 대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만연한 정치 혐오가 싹트는 지점도 여기다. 정치인 다수가 써 내려간 드라마의 '형식'에 사람들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에 내용은 지나치게 거창해 대중의 삶과 유리돼 보인다. 위정자들은 깊은 뜻이 담긴 정치적 행보를 몰라주는 시민들이 야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능한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행보와 민생을 결부하는 데 탁월하다. 대의제 하에서 위정자의 제1목표는 시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준석 신임 당 대표는 기성 정치인과 대중의 삶이 유리된 지점을 파고들었다. 30대 0선 정치인은 정치 혐오의 대상이 되는 기성 정치인과 거리감을 두기에 좋은 스펙이다. 그렇다고 형식만으로 이 신임 대표가 당성 됐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터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 낙선할 동안 적극적으로 대중 매체에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예능·시사·토론·다큐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출연했으며, 뚜렷한 존재감 또한 과시했다.
이 대표의 형식은 대중에 차츰차츰 다가갔다. 한편 2030남성들의 압도적 지지는 특기할 만한데, 이 대표는 이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면서 기성 정치인은 상실했던 대표성을 회복했다. 지지자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정치 비평에서 대의제의 참맛을 경험한다.
이 대표의 평소 언행을 보아 이번 당 대표 당선은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노력의 싹이다. 서사의 기승전결 중 '기'를 막 지나온 셈이다. 이제 사람들은 형식 너머 내용에 주목할 준비가 됐다. 일각에선 그가 철 지난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답습한다는 비난이 쇄도한다. 뭇사람들이 그를 지지하는 대목이기도 한 만큼 양날의 검이 될 터다. 그가 써 내려갈 드라마의 형식과 내용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