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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연습144] 광주

-철거 중인 건물이 도로를 덮쳤다

by leesy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을 보고 <위험사회>의 집필을 재촉했다. 그에게 근대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민주화된 시대다. 폭발한 원자로가 뿜어대는 스모그처럼 위험은 사회 곳곳으로 스며든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복잡해진 기술과 거대해진 산업의 규모는 어떤 계층의 사람이든 갑작스러운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벡이 묘사한 근대의 위험에 안전불감증까지 더해져 초위험사회가 된 모양새다.


9일 광주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도로를 향해 쓰러졌다. 건물과 도로 사이엔 얇은 가림막뿐이었고, 건물 잔해가 버스를 덮쳤다. 승객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크게 다쳤다. 그 어떤 승객도 대명천지에 무너진 건물 잔해의 습격을 받으리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물은 이미 붕괴 조짐을 보였고, 철거 작업 중이던 인부들인 미리 대피한 상태였다.


도로 바로 옆 건물을 철거하는데 이 같은 사고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법적으로 강제된 안전 조치를 지켰는데도 이런 사고를 막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조치 따윈 애당초 없었을까. 건물 내 사람들은 대피하면서도 도로는 막을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위험을 알릴 시간이 촉박했다면, 어째서 즉각적으로 도로를 차단할 안전인력을 미리 배치해두지 않았던 걸까.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순간들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


이 같은 불의의 사고는 매년 800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만약의 만약’을 가정해 안전장치를 덧대기보단, 현존하는 위험까지 외면하는 게 일터의 관행이다. 후자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일하다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일은 재수가 없어 발생한 예외적 사건으로 일터의 관행과는 무관할 뿐이다. 사람의 목숨마저 경제성으로 조율하는 비정한 사회의 민낯이다.


일하다 죽는 사람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에는 조직적 저항이 따라온다. 위정자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손에 쥔 이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투쟁한 끝에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마저도 국회를 통과하니 누더기가 됐다. 이마저도 소기의 성과로 인정하고 박수 쳐야 하나. 애석하게도 산재 규모는 이후에도 줄지 않고 있다. 더 안전한 내일을 위해선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 걸까.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를 집필한 지 한 세대가 넘게 지났다. 한시라도 바삐 위험사회를 안전사회로 바꿔야 한다. 공적 가치를 잠식한 경제적 논리에 수긍할 게 아니라, 사람의 목숨보다 귀한 가치는 없다는 합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어제 광주의 참사는 경제 규모 10위 국가의 실상을 까발렸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목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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