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쟤는 뭐지?”
“야, 뭐하냐? 빨리 내려와!” 가파른 내리막길 끝자락에서 친구가 소리쳤다. “조심해서 내려가야지. 차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잖아” “여기서 무슨 차가 튀어나온다는 거야. 그럴 거면 자전거 왜 타냐? 끌고 내려와!” 결국 난 자전거를 끌고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과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던 날의 이야기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온갖 탈것들이 유행이었다. 생의 첫 탈것은 초등학교 2학년 산 인라인스케이트였다. 그 뒤로 킥보드, 스케이트보드를 거쳐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자전거에 정착했다. 그때 자전거를 가르쳐준 사람이 나를 타박한 이 친구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친구는 방과 후 수업처럼 내게 자전거 탑승 요령을 전수했다. 그 덕에 운동신경 제로인 내가 보조 바퀴 단계도 밟지 않고 빠르게 자전거에 능숙해질 수 있었다. 당시에 우리 엄마가 그 친구에게 크게 고마워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도심에서 초등학생이 마음 편히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사주기는 하지만 신호등 넘어까지 타면 안 된다” 물론 마음이 불편한 것은 부모님이었다. 당시 난 부모님의 신신당부를 곧이듣는 착한 어린이가 아니었다. 자전거에 익숙해진 뒤로 흡사 폭주(?)하는 라이더가 됐다.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 쏘다니다 지루해질 때면 대로변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달리는 차들과 함께 차도를 공유하며 질주했다.
하루는 친구와 좁은 골목길에서 자전거 경주를 했다. 종종 차가 다니는 열악한 코스였다. 차는 알아서 피하기로 하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쪽에서 나온 푸른빛이 쪽보다 더 푸르다 했던가. 경주는 나의 승리로 끝났다. 그 뒤로 며칠은 으스대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 영광스러운 과거를 뒤로한 채 타박을 듣는 신세라니,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억울한 마음보다 친구가 걱정스러웠다. 터덜터덜 자전거를 끌며 친구에게 말했다. “야 너도 항상 좌우 전방 주시하면서 내려가야지” 친구는 들은 체도 않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자전거 탄 친구의 뒷모습은 어릴 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증이 생겼다. 난 왜 페달을 힘껏 밟지 못하게 된 걸까, 왜 브레이크에서 두 손을 떼지 못하게 됐을까? 머리가 커지며 겁이 많아진 이유도 있을 테지만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진 이유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자전거 도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꽂혀 있어도 속력을 내지 못한다. 직선으로 뻗은 자전거 도로도 내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탓이다. 날 겁쟁이로 만든 한국 사회를 원망하다가 앞서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봤다. “그럼 쟤는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