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7] 커피

- 동네 커피 자판기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by leesy

집 근처에 낡은 커피 자판기 한 대가 있다. 추측하건대 최소 20년은 된 자판기다. 밝은 살구색으로 추정되는 본래 색을 잃고 메마른 흙빛을 띠게 된 자판기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자판기 전면 안에 꽂힌 사진도 덩달아 빛이 바랬다. 사진 속 여성은 외국의 이국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마치 여기서 커피를 뽑아 먹으면 자기처럼 웃게 된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외관만 보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이니.


며칠 전 교복 입은 학생 여럿이 자판기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한 남성이 커피 자판기를 살피고 있었다. 학생들이 호기심에 자판기를 사용해봤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모양이다. 관리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판기는 이미 예전에 사망 선고를 받고 처치곤란 상태였던 것 같다. “요즘 누가 자판기 커피를 사 마시겠어” 난 홀로 중얼거렸다.


도처에 근사한 카페가 널려있다. 가직한 거리에 카페 두 세 곳이 몰려있는 곳도 흔하다. 커피 한 잔이 밥 한 끼 값이라며 불만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1500원, 900원짜리 커피를 파는 가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판기 커피보다야 비싼 가격이지만, 카페에서 파는 커피 또한 가격이 내려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500원에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카페는 이미 포화 상태다. 입지가 탄탄한 몇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다들 어렵다고 한다.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마저도 인스타그램 등 SNS를 동원한 홍보도 필수다. 각 카페의 홍보 전략도 천차만별이다. 안락한 인테리어나 유니크한 선곡을 강조하는 곳도 있는가 하면, 깨끗한 화장실도 홍보의 요소가 된다. 포화 시장에서 소비자의 눈에 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는 비단 카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은 꾸준히 문제시돼왔다. PC방, 편의점, 치킨과 피자를 파는 가게 또한 넘치고 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자 사람들의 지갑은 입을 굳게 닫은 채 열리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해고된 이들이 자영업자가 됐다는 분석은 하도 들어서 지겹기까지 하다. 그 뒤로도 자영업자는 꾸준히 늘어왔다. 이 상황에서 장사가 안 되는 이유는 개인의 탓이 아니다. 구조적 문제다. 자영업자 대출은 매해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요원하기만 하다.


지금도 동네 커피 자판기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대신 전면에 ‘고장’이라고 쓰인 종이가 한 장 붙어있다. 종이가 사진 속 여성의 얼굴을 가렸다. “이왕이면 코팅해서 붙여주시지” 종이는 가을바람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곧 저 사진 속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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