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인간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
인간을 인간에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전 세계가 인공지능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곧 인공지능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눈에 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면 그들과 우리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그에 답하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는 일이 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를 말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좋은 발제문이 될 수 있다.
40년 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드니 빌뇌브 감독이 현대화한 영화다. 주인공 K는 인공지능 형사다. 외형도 인간을 닮았다. 핵전쟁 뒤 오염된 지구에서 인간이 하지 않는 궂은일을 맡아 처리한다.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처럼 행동하는 K를 경멸한다. 세기말 분위기가 도사리는 이곳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K는 이들의 조롱에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다.
40년이란 세월을 관통해 두 감독은 같은 질문하고 있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의 유무가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가? 두 영화에서 인간성은 나 외의 존재에 느끼는 측은지심으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을 가장 애틋하게 대하는 존재는 인공지능 K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인 셈이다. 정작 진짜 인간들에게서 타인을 향한 배려심은 발견하기 어렵다.
실제로 K 같은 인공지능이 탄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K를 경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이미 조짐이 읽히기 때문이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괄시받는 사람들은 흔하다. 종교도 차별의 근거가 된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배척하는 태도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틀렸다. 그것은 동물의 본성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성은 동물적 본성을 제어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떤 문학평론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부추기고 있다. 만인에 대한 투쟁을 정당화하는 시대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시름해도 괜찮은 사회다. 그렇게 얻은 이익마저도 우러러보도록 장려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성이 싹 틀 토양은 메말라만 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는 양극화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으로 양분돼 봉합의 전제가 없는 갈등 속에 빠져있다. 그 결과 인간성은 보기 힘든 자원이 됐다. 영화 속 사람들은 인간성을 지닌 인공지능을 혐오하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자신들의 실체는 자각하지 못한다. 인간성을 살실한 인간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근미래 인공지능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그때도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