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 뺏기 사회다
의자 뺏기 사회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자는 10개뿐인데 15명이 앉겠다고 달려든다. 한 명씩 앉아도 다섯 명은 앉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섯 명은 낙오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때때로 누군가는 홀로 의자 서너 개를 차지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앉아 쉬지 못할 때 의자 여러 개를 붙여 그 위에 누워있는 식이다. 이들은 남은 의자의 분배 방식을 멋대로 정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잘 보이면 의자 하나를 얻을 수도 있고, 의자 한 개에 서넛이 끼어앉을 수도 있다.
이런 우리 사회의 풍경이 최근의 경향만은 아니다. 참다못한 사람들이 2011년 의자를 나누라며 봉기한 적이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로 시작한 이들의 움직임은 한국 사회를 비롯한 전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의자는 쉽게 분배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구호도 옅어졌다. 그렇다고 의자를 요구하는 이들의 봉기가 실패로 끝났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의자에 앉지 못한 이들에게 1명이 의자를 독차지하고 있는 사회의 실상을 알렸으니 말이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기본소득 도입 논의도 의자 뺏기 사회에 대한 저항의 연장선에 있다.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보증하는 일정 소득을 말한다. 근로 여부와 상관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의자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간이 의자라도 주자는 주장이다. 소수가 의자를 독점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도 사회의 지속성을 낙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AI 등 신산업이 부의 독점을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강하다.
기본소득의 쟁점은 공짜 점심에 대한 거부감이다. 점심값은 땅에서 솟는 게 아니다. 재원은 결국 세금이다. 세금의 눈먼 돈처럼 여겨지는 사회다. 세금으로 공짜 점심을 나눠준다고 하면, 강한 조세저항에 부딪힌 것은 자명하다. 기본소득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돼야 하는 이유다. 기본소득이 모든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과 이를 위해 쓰이는 세금은 사회를 지탱하는 데 쓰인다는 확신을 납세자에게 안겨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복지병에 대한 우려다. 의자에 앉으려고 다들 열심히 일해왔는데, 공짜 의자가 생기면 근로 의욕이 하락하지 않겠냐는 걱정이다. 이러한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의 규모를 정교하게 설정해야 한다. 지칠 때 쉴 수 있는 크기의 간이 의자여야 하지만 더 좋은 의자를 위한 열망을 꺼뜨려선 안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이 더 큰 부가가치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해 새로운 도전을 향한 의욕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전 국민에게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을 실험할 기회였다. 인류 역사를 볼 때 망조에 든 국가는 부의 불평등으로 신음했다. 부의 불평등도 임계점에 다다랐을지 모른다. 무엇이든 시도해야 할 때다. 코로나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