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 성적이 공정할 것이라는 착각은 말자
얼마 전 마이클 샌델이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을 발표했다. 정의란 화두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샌델이 이번엔 ‘공정’을 들고 나왔다. 10년 전 샌델은 정의의 단초를 공정에서 찾고자 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샌델이 천착하는 주제는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트럼프 시대를 보내며 샌델은 오늘날의 공정이 가진 참뜻을 탐구한다. 10년을 돌아 센댈의 질문은 다시 ‘공정이란 무엇인가’인 것이다.
샌델에게 오늘날의 공정은 능력주의와 동의어다. 사람들이 가진 능력에 맞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로 여겨진다. 집안, 외모, 성별 등을 떠나 오직 실력만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해야 공정한 사회라는 것이다. 샌델은 이 같은 공정한 사회의 상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 환상이 미국 사회의 사회정치적 양극화를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누군가의 능력만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달리기 시합을 하더라도 출발선이 같지 않으면 순위는 의미가 없어진다. 능력주의가 만연한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게 샌델의 진단이다. 개인의 지능, 신체조건, 가정환경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시대가 바라는 능력은 수시로 변화한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 똑똑한 두뇌와 부유한 부모를 갖고 태어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달리 그어진 출발점으로 둘 사이의 간극은 평생 동안 벌어진다. 전자의 삶에 익숙한 미국의 엘리트들은 후자의 삶을 도외시하며, 자신들의 성취를 온전히 자신들의 능력으로 돌려왔다. 소외된 이들은 자신들을 대변해줄 사람을 찾아 나섰고, 그 결과가 도널드 트럼프다.
샌델의 문제의식이 싹튼 곳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같은 문제의식을 품기에 한국 사회 만한 곳도 없다. 한국에서 능력주의에 따른 가지치기는 삶의 분기마다 촘촘하게 박혀있다.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각종 시험이 수백 년 전부터 제도화된 국가다. 장원에 9번 급제한 율곡이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똑똑한 인물로 현재까지 추앙받는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비슷한 성격의 각종 국가고시를 패스한 이들이 국가 요직을 꿰차고 엘리트로 역할한다. 시험공화국에서 능력은 시험 성적으로 결정된다.
수능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이유이기도 하다. 대입 경로가 수시 제도와 함께 다양화되긴 했으나 수능의 위상은 건재하다. 매년 수시는 공정성 논란에 휘말리는 반면 수능에 불공정 문제를 거론하는 이들은 드물다. 오직 펜과 시험지만 주어진다는 이유로 수능 시험장은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공간이 된다. 이때 학생들이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불공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샌델은 일정 자격만 갖춘다면 추첨제로 대학에 입학하게 하자는 도발적인 제안까지 나아간다. 능력주의의 시작과 끝이 학력 격차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논의는 커다란 사회적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그러나 샌델의 주장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올해 수능이 끝났다. 수능 성적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만 이 말은 하고 싶다. 시험 성적이 공정할 것이라는 착각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