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거리 통학생으로서 피하고 싶은 게 있다
장거리 통학생으로서 피하고 싶은 게 있다. 한겨울 아침 첫 강의다. 두 시간가량 걸리는 통학 시간을 감당하려면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 대개 잠도 덜 깬 상태라 현관을 나서며 맞는 추위에 이가 바들바들 떨리곤 한다.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을 지나 버스에 오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 바로 자리에 앉는 일은 드물다. 한겨울 대중교통은 히터 작동에 인심이 후한 편이라 몸은 곧바로 노곤해진다.
흔들리는 손잡이를 잡고 졸다가 깨면 차창 밖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출 감상도 잠시다. 하루의 시작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빡빡한 그 날의 강의 시간표, 밀린 과제, 귀찮은 조모임과 다가오는 시험 기간으로 골치가 아파온다. 뜨는 해가 반가웠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주변을 둘러봐도 일출을 손뼉 치며 반기는 사람은 없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겠지만 말이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는 이들은 대다수가 학생이거나 직장인일 테다. OECD 최고 수준의 학습량과 근로 시간을 감내하는 이들이다. 내 경험상 등교 시간보다 하교와 하원 시간이 반가웠고, 주변 친구들도 나와 같았다. 출근 시간보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건 말해 입 아프다. 통학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안색은 그리 밝지 않다. 대다수가 일출을 보며 나처럼 오늘 할 일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속으로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부러 아침마다 오아시스(Oasis)의 모닝글로리(MorningGlory) 노래를 듣기도 했다. 해체한 뒤에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의 곡이다.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노엘 갤러거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어린 시절을 딛고 세계적 스타가 된 인물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침을 좋아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오늘 하루는 무슨 재밌는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며 일어났다고 한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데엔 그의 이런 긍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긍정의 비결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아침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고 싶지만 내가 기다리는 건 어쩔 수 없이 밤이다. 일출을 보며 답답해진 가슴은 일몰에 다가갈수록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운이 좋은 날은 하굣길 버스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여전히 두 시간의 하교 시간과 졸음가 사투하며 끝내야 할 과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일몰 때만큼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에 젖곤 한다. 그래서인지 동승객들의 표정도 밝아 보인다.
일출과 일몰의 관계가 역전되는 날이 드물게 있다. 한해 마지막 일몰과 새해 첫 일출을 대하는 마음은 정반대가 된다. 이날만큼은 일몰이 오지 않았으면 싶다. 반면 일출은 반가워진다. 설레는 마음에 온갖 새해 다짐을 늘어놓는다. 이럴 때면 나도 하루는 오아시스의 보컬이다. 새해 일출을 보러 굳이 먼 길을 나서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12월 중순이다. 올 한 해도 거의 끝나간다. 모든 이들의 하루하루가 새해 첫 일출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과 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