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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Dec 19. 2020

[작문연습20] 브이로그

- 당의정을 씌운 일상

 일기는 일상의 기록이다. 하루를 마치며 떠오르는 생각은 모두 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누군가는 그날 일어난 일을 건조하게 서술한다. 누군가는 내밀한 속사정을 풀어놓는다. 혹은 하루를 반추하며 반성할 거리를 찾아 기록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일기의 내용은 제각각이겠지만, 공통점도 있다. 일기의 내용은 타인에게 선뜻 공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다른 이가 읽는 걸 전제로 쓰는 일기에는 진솔한 내용은 터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경험 중 하나다. 글쓴이의 가장 사적인 생각을 엿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엿보는 이의 즐거움 이상으로 엿보이는 이는 수치스럽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학교에서 하는 일기 검사는 가장 부조리한 문화 중 하나다. 나이만 적을 뿐인 하나의 인격체인 아이들의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에 침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가도 서슴지 않으니 말이다. 


 몇 년 전부터는 브이로그란 영상 일기가 유행하고 있다. 영상 텍스트에 익숙한 이들은 이제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한다. 소재는 문자로 쓰는 일기만큼이나 다양하다. 아침에 눈을 떠 양치하고 세수하는 것부터 친구와 만나 수다 떠는 일 등 사소한 일상까지 좋은 소재가 되곤 한다. 잘 찍은 영상을 편집해 각자의 미디어에 게시하는데, 유튜브의 발흥이 브이로그 문화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브이로그와 일기 사이에는 영상과 문자라는 차이 외에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브이로그는 타인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제작된다는 점이다. 비공개를 전제로 작성된 문자 일기에는 혼자만 볼 수 있다는 폐쇄성 덕에 개인의 진솔한 모습이 담기곤 한다. 그러나 공개를 전제로 한 브이로그는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에게 보여줄 일기에는 종종 거짓말이 담기기 마련이다. 브이로그에서는 선생님의 평가는 시청자의 댓글로 대체된다. 


 사람들은 남이 올린 브이로그를 보며 관음적 욕망을 충족하곤 한다. 브이로그의 출연자들은 자발적으로 관음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어떤 이의 일상은 ‘좋아요’ 10만 개의 가치를 획득하지만, 어떤 이는 좋아요 0개에 그치는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는 각자가 시청자의 관음증을 얼마만큼 충족시켰는지에 대한 평가 지표와 같다. 그에 따라 달리는 댓글의 내용도 달라진다. 


 그래서 브이로그 속 일상은 포장된 일상일 수밖에 없다. 당의정을 씌운 일상인 셈이다. 그 속에선 진솔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브이로그 속 타인의 일상에 과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그럴 때면 브이로그는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할 일기와 같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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