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대가 추구하는 가치
의대의 첫 시작, 일주일간의 오리엔테이션.
무슨 오리엔테이션을 일주일 내내 오전 7:30부터 오후 5:15까지 하냐고 생각할 것이다.
필자인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며 올바른 의사란 누구인가를 잊지 말기 바라는 학교와 선배 의사들의 당부 어린 외침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행동의 본질을 계속 일깨우려는 노력이 다분히 보인다.
어떤 배경의 사람이든 의사 앞에 서있는 당신을 단순한 환자 혹은 해결해야할 문제점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기를 꾸준히 요구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구체적으로 적어보려한다.)
내가 직접 한국 의대를 경험한 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인상깊은 미국 의대의 가치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미국 의대의 경우, 사회 정의, 다양성, 정신 건강을 매우 중시한다.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의사는 그들의 아픔이 자리잡은 이유가 단지 그들 개인의 사유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 때문임을 가르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특히 흑인 인구가 경험하는 의료 불균형(health disparity)의 유구한 역사가 증명한다.
예를 들어, 흑인 노예 제도가 1865년에 폐지되었음에도 1932년부터 40년간 알라바마주 터스키기 지역에서 정부의 지도하에 흑인 남성에게 매독 치료제라며 매독을 주입하고 그들 몰래 연구한 슬픈 역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국가 전체가 경험하는 인종차별이라는 역병으로 인해 아직도 흑인 인구는 정치, 사회, 경제, 의료 등 모든 면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고 있다.
흑인 인구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서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지닌 이들을 대면할 의사는 그 누구보다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환자가 있을 때 병원 측에서 제공해주는 실물/전화 통역가를 어떻게 활용할지, 환자의 종교적 혹은 문화적 신념이 의사가 추천하는 의료 행위와 충돌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 등등의 여러 시나리오에 대해 토론하고 현직에서 몇십년을 일한 의사들을 초청해 강의를 한다.
환자를 인간으로써 대우하는 존중과 공감을 가르침과 동시에 의사 본인에 대한 존중 또한 강조한다.
내 몸과 정신이 건강해야 환자를 잘 보살필 수 있다는 근본적인 사고가 존재한다. 또한 의대 교육이라는 것이 매우 지치고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학교 내에 의대생만을 위한 상담심리사들과 wellness office가 존재한다.
교육 기관에서 미래의 의사들에게 이 가치를 중요하게 가르치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현직에서의 문제 때문이다.
번아웃으로 인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레지던트들이 존재한다. 그 힘든 의대 공부를 마치고 조금만, 1-2년만 버티면 다왔는데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젊은 영혼들에게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레지던트는 "원래" 그런 거라는 소위 말해 "꼰대"다운 발언을 하고는 한다.
나의 끓어넘치는 분노를 잠시 풀어보자면..
당신이 경험해보지 않고 그런 말을 한다면 본인이 하루 평균 4시간 취침을 하며 주당 80시간 이상을 근무하면서 시급을 만원 이하로 받으면 과연 그 말이 나올까 묻고 싶다.
만약 당신이 경험한 선배 의사/간호사/의료종사자로써 그런 말을 한다면 이런 행태를 경험한 당신에게 연민을, 하지만 본인이 받은 시스템적/개인적 폭력을 다른 개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 당신의 폭력성에 대한 역함을 느낀다.
쉽게 생각해서 법이 있는데 고발하면 되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어떤 whistleblower나 그렇든 만약에 HR에 이를 고발하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본인 속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근무시간법을 어기며 일을 시킨다고 고발하면 그 프로그램 자체를 accredidation을 취소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속해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자체가 무효가 되어서 나 또한 전문의를 따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 어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그 사람을 고용하려 할까?
단순히 노동 환경의 문제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 지저분하고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보험 시스템 때문에 의료종사자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제로 얼마전에 United Healthcare이라는 악덕 보험 회사의 사장이 살해되었는데 용의자를 옹호하는 사회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직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차트에 작성하는 한 글자 한 글자를 특정 방식으로 작성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 회사가 꼬투리를 잡고 환자에게 모두 부담하게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국 의사들은 종종 환자를 위해 보험 회사와 혈전을 벌인다.
한 사례로 소아과 의사가 암 chemotherapy를 받아서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는 어린 환자의 약을 United Healthcarer가 deny해서 (aka. 필요없는 약인데 의사가 과잉 처방했기에 이 약을 줄 수 없다는 뜻) 담당 의사가 고급진 언어로 분노의 편지를 작성한 경우가 있다.
(이 글의 커버이미지가 바로 이 편지다. 출처에 욕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얗게 지워놓았다..
출처: Nikamats. “A doctor’s letter to UnitedHeathcare for denying nausea medication to a child on chemotherapy” Reddit, 5 Dec. 2024. https://www.reddit.com/r/interestingasfuck/comments/1h7jh11/a_doctors_letter_to_unitedheathcare_for_denying/)
또 다른 역경은 소송이다. 소송의 국가 미국, 아마 상상이 갈 것이다.
이번주 남편이 알려준 사건으로 한 의대생이 병원에서 shadowing을 하는 와중에 한 의사의 실수를 발견하여 알렸다고 한다. 당장 그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를 세세히 설명하고 학생이 발견한 덕에 실수를 알아차렸다고 덧붙였다. 그러고서 며칠 후 소송장이 그 환자가 스쳐지나가며 봤던 모든 의사들, 간호사들부터 심지어 그 실수를 알아차린 학생에게까지 날라왔다고 한다. 병원에서 주치의가 다른 이들은 소송해도 학생은 환자 본인을 위해 목소리를 낸 인물이기에 학생은 빼달라고 했지만 의료 소송의 값어치를 아는 환자와 보호자는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후에 의료 종사자가 될 사람으로써 내가 편파적인 시각을 지녔을 수 있음을 인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그 어떤 국가에서든 의료 종사자의 올바름과 그 올바름을 옹호하고 지지해주는 사회, 문화 그리고 실질적인 시스템을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나는 가끔 의사가 된 미래의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할까 두렵다.
그러나 나는 의료가 다른 생명들에게 가진 힘과 중요성을 알기에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러려면 우선 첫 학기의 마지막 시험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공부하러 가야겠다.
(또륵.. 끝이 없는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