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was a textbook encounter."
벌써 2학년의 반까지 달려왔다.
그동안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머릿속에 넣으려고 애써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눈물이 난다, 허허…)
불행인지 다행인지 곧 dedicated를 시작한다. Dedicated는 소위 말해 국가고시를 위한 수험기간이다.
미국의 경우 의대를 다니는 동안 국가고시 1, 2차를 모두 통과하고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의사가 될 수 있다. 고로 나는 국가고시 1차를 위해 학교 수업도 하나 없이 집에 박혀서 공부만 하는 수험 기간을 곧 시작하는 거다.
하루하루 이 수험기간이 다가올수록 겁이 난다.
여태껏 공부했던 것들을 얼마나 잊었는지 직면하게 될테니.
물론 방대한 양을 공부해야 하다보니 단 번에 모든 걸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걸 안다. 그리고 실제로 병원에서 환자들과 마주하면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더더욱 그 지식이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엄습한다.
‘시험을 실패하면 어떡하지.
무엇보다 나중에 병원에서 멍청하게 아무것도 못하고 환자들한테 아무 도움도 못 되면 어떡하지.’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이 도구도 아니고 쓸모로만 정의되는 존재가 아님을 알고 내 주변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밝히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너라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할꺼면서 정작 나 스스로는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의대생으로써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건 어렵다.
학생으로써 경제 활동이나 노동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자리라기 보다는 소비하는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대생은 병원에서 일하는 그 누구보다도 clinical 경험이 적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는 것보다 그 곳에서 재빠르게 배우는 역할이다.
아예 학교 차원에서 트레이닝으로 자주 가는 Grady에서는 대문짝만하게 “Student”라고 스크럽 앞판과 뒤판에 써 있는 자주색 스크럽을 입는다. 좀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처음 그 스크럽을 봤을 때 나는 응급 상황에서 혹시라도 누군가가 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아까운 시간만 낭비할까봐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의대생이 된 근 일년 반동안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래서 나는 OPEX (OutPatient EXperience: 격주로 병원에 가서 학생이 혼자 환자를 보고 의사가 검수하는 형태의 트레이닝) 수업의 일환으로 primary care 환자들의 외래 진찰을 돕는 게 내가 계속 나아갈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인터뷰를 한 환자 분들은 항상 내게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나의 쓸모를 나에게 증명해준 환자 분들에게 더 고마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게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 OPEX 수업도 마무리 되었고 곧 수험기간이 시작하면 나의 쓸모를 스스로에게 증명할 기회들이 더 적어질 걸 알기에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었다.
그런 나는 몰랐다, 오늘 나의 쓸모를 다시 한 번 마주할 줄은.
EPC (Essential of Patient Care: 의사소통 방식, 임상기술 등의 환자와 관련된 모든 걸 배우는 수업) 마지막 시험 결과를 받았다.
마지막 시험은 총 2가지의 시뮬레이션으로SP (Standardized Patient: 환자의 증상과 행동을 훈련 받은 배우)를 진찰하고 카메라를 통해 관찰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채점 받는 형식이었다.
SP의 코멘트(이 글의 배경사진)가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This was a textbook encounter. I felt seen, heard, and cared-for throughout our time
together. You were confident and thorough in your history-taking and physical exam. You used your sense of humor to put me at ease. Your Opening and Closing were strong and solidified my confidence in you. I would gladly have you as my physician.
…
Seriously, you're really good at this and have chosen the right profession.”
“교과서 같은 진찰이었어요. 우리가 함께 한 시간 내내 정말로 저를 봐주었고 들어주었고 신경 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인터뷰랑 임상기술 모두 세세하고 자신감 있게 행했어요. 제가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유머를 사용했고요. 첫 만남과 마지막 만남 또한 아주 잘 행해졌고 덕분에 당신에 대한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당신이 제 의사가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
진심으로, 정말 잘했고 천직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심연 아래로 빠질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게 말할테다,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