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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31. 2022

11. 식사를 합시다.

휴학의 시작






 그 무렵 나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정점을 찍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릴 적부터 앓고 있던 아토피가 말 그대로 내 몸에 ‘창궐’했다. 얼굴은 온통 붉어지고, 때때로 진물이 나고, 간지러움에 밤잠을 제대로 잔 날이 없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건강은 더욱 나빠졌고 컨디션은 당연히 떨어졌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정신 차려보면 옷 밖으로 드러난 손등이나 손목을 벅벅 긁고 있었다. 그 소리가 앞, 뒤, 옆 사람들을 방해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상처에 맺힌 피보다 내 마음에 흐르는 죄스러움과 민망함이 더 신경 쓰였다.


 수업에 빠지는 날이 잦아졌다. 과제를 제 시간에 제출하지도 못했다. 부모님은 이 즈음 내가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아침마다 그리고 일과 중에도 자주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저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방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토피 때문에 엉망인 얼굴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를 방 안에 가뒀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밥은 꼬박꼬박 먹었다. 도저히 해 먹을 힘은 없어 배민 VVIP가 됐다. 부모님에게 받는 용돈으로 매 끼니 배달을 시켜먹는 건 사치였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선 뭐라도 배에 집어넣어야 했으므로,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유일하게 내가 생기가 도는 시간이었으므로, 로스쿨생에게 주어지는 마이너스 통장을 긁어 내 뱃살을 불렸다. 그렇게 입학하기 전보다 15kg이 늘었다.




 피부는 피부대로 난리고 살은 살대로 쪘다. 거울을 보기가 싫었다. 온통 상처투성이인 몸을 씻어내는 것도 고통스러워 샤워는 최대한 미뤘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이 조금씩 하지만 빠르게 무너졌다. 그렇게 2학년 2학기가 끝났다.


 그렇게 좋은 강의라던 사법연수원의 ‘재판 실무’ 과목도 F학점을 겨우 면할 정도로 치러냈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배운 것도 없었다. 로스쿨 과정의 ‘꽃’이라던 재판 실무 과목을 하나 날려버리고 나니 로스쿨을 다니는 것에도 회의가 들었다.


 내가 분에 넘치는 공부를 하겠다고 로스쿨을 입학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름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고, 우수 자소서로 뽑히기까지 했는데. 1학년 1학기까지만 해도 선배, 동기들 사이에서 정말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듣는 나였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무너진 게 믿기지 않았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휴학 원서를 작성했다. 지도 교수님과 면담을 잡았다. 교수님께서는 지난 통화 이후로 나를 간간히 챙겨주고 계셨으므로 휴학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그리 놀라지 않으셨다. 교수님의 지도제자 중 나를 제외한 동기 언니, 오빠들은 다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나에게 더 신경이 쓰이실 법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교수님과의 대화를 잊지 못한다.



 “휴학을 하는 건 좋습니다. 필요하면 해야지요.”


 “네....”


 “그런데 저랑 약속 하나만 합시다.”


 “어떤 약속이요?”


 “아무리 힘들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나와서 저와 식사를 합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터져 나오는 걸 참으려 정말 애썼다. 우울증이 심했고, 아토피 때문에 생활이 힘들다는 내 말을 듣고 그래도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지 않으려는 교수님의 배려가 눈 뜨겁게 감사했다.


 내가 눈물을 참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교수님께서 새끼손가락을 내미셨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과의 대화를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회사에서 나 대신 울었다.



 - “정말 감사하신 분이다.”



 여전히 감사한 나의 지도교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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