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Nov 18. 2022

12. SOS : 긴급구조요청

암흑의 휴학기






  그렇게 휴학이 시작됐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라 하던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힘겨웠다. 약속을 잡으면 몸 상태가 안 좋다는 핑계로 자주 파투를 냈다. 각자의 일로 힘들고 바쁜 친구들에게 굳이 내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다 풀었지만 오해가 쌓이고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방에 있던 암막커튼을 단단히 쳤다. 그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햇빛 한 톨,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24시간 컴컴한 방 안에서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있었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 같았다. 그래. 육체만 살아있고 정신은 죽어있었다는 말이 맞다. 


 깊은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 내가 헤어나려 허우적대면 더 깊고 짙은 곳으로 가라앉는. 축축한 늪. 하루 종일을 내리 자다가 눈을 뜨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에서 깨는 일도 잦았다. 그 와중에 배는 고파 어플을 켜서 음식 배달을 시키고 그저 연명하기 위해 속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無가치. 無쓸모. 이렇게 숨만 쉰다면 살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그 빛을 다 잃고 시커먼 방에 들어앉아 뱃살만 불리고 있는 것이 못 견디게 싫었다.


 그렇게 날짜 개념도 요일 개념도 사라졌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어쩔 땐 2박 3일을 누워서 보내기만 했고 어쩔 땐 밤을 새 넷플릭스를 봤다. 의미도 없이 종잇장 같은 피자를 씹어 삼키며 희희낙락 대는 애니메이션을 하릴없이 보고 있으면 한심한 나 자신이 조금 지워지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며칠 몇 달을 보냈을까. 잠을 자다가 눈을 떴다. 낮인지 밤인지도 몰랐다. 문득 내 입에서 믿지 못할 말이 흘러나왔다.



 "아. 죽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다. 나 스스로를 가둔 그 방 안에서 내가 당장이라도 나를 해칠 것 같았다. 머릿속엔 온갖 검붉은 영상들이 가득 들어찼다. 두려움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119를 부르는 심정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가 새벽 3시 30분 정도였으니 엄마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내 전화를 받았다.



 "왜. 무슨 일 있어? 괜찮아?"



 하염없이 울기만 하다가 나는 나를 또 벼랑 끝에서 건져냈다.



 "엄마. 나 좀 살려줘."


 
그 말을 들었을 때 엄마가 속으로 어떤 생각들을 했을지 헤아려보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엔 그게 최선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급박한 구조요청이었다. 엄마는 우는 나를 달래고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 새벽에 당장 내 방으로 오겠다고 했다.


 감정이 한 풀 가라앉고 나니 이성이 돌아왔다. 아빠는 밤 운전을 싫어했고 자다 깨서 하는 운전이 안전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아침에 날이 밝으면 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한참 잠에 들지 못했다. 아마 엄마, 아빠도 내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겠지.




 후에 이 일을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엄마가 그랬다. '그날 엄마에게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그때엔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날 엄마에게 전화할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를 떠올릴 수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릇된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빠의 온 마음을 내가 느끼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구조요청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탈출기가 시작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식사를 합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