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야기1

미국에서 온 고양이

by 리시안셔스

2023년 초여름 밤 습관처럼 어김없이 외국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앱을 켰다. 각기 다른 사람들과의 통화를 거쳐 만난 건 미국에 살고 있는 나보다 한 살 어린 한국 여자였다.

지구 반대편 우리를 이어주던 어색함.

낯섦 뒤에 따라오던 한국 사람에 대한 반가움.

그 사이에서 대화의 공백이 불편함을 더할세라 곧장 나의 고민을 주제로 얘기를 시작했다.

분명 그녀에게 난 얼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일 뿐일 텐데 고맙게도 그녀는 내 얘기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었다. 통화를 연장하며 우리는 점차 편해질 수 있었다. 아니 편했기에 더욱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금세 가까워졌지만 통화 연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때쯤에 나는 우리를 스쳐가듯 기억 못 할 인연으로 남기기에는 사뭇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용기를 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고 다행히 그녀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녀도 나라는 새로운 연이 싫지 않은 듯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서로의 삶에 작은 씨앗을 하나씩 남겨놓았고 그것들은 우리를 묶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오빠와 동생으로 같은 세상에 머물렀다.

우리는 종종 문자를 주고받으며 큰 파도 없이 잔잔하게 관계를 유지했다.





몇 주 뒤 한국에 도착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소개팅 약속이 깨졌다며 한껏 꾸미고 나온 것이 아까우니 내게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살면서 여자와의 연이 없던 나는 약간의 설렘과 긴장을 품고 밖을 나섰다.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낯선 그 여자를 드디어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날씬하고 생각보다 큰 키에 밝은 청바지와 하얀 배를 조금 드러낸 상의 모두가 내가 알던 당돌한 그녀의 목소리와 참 닮아있었다. 무엇보다 흰 마스크가 가리지 못한 맑게 빛나는 큰 두 눈이 나를 흔들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갑작스러운 요청에 연신 미안하다던 그녀와 빛나는 밤거리를 지나 한 타코 전문점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 난 숙맥인 탓일까 그녀의 예쁜 두 눈을 보기가 어렵기만 했다. 수년간 쌓인 우울함에 풍화된 미세한 자존감으로 겨우 몇 초간 눈을 맞추고 다시 고개를 떨구는 게 고작이었다. 그녀는 그런 내가 의아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자꾸만 살피며 갸우뚱했다. 남자로서는 참 멋스럽지 않게 내 모습을 감추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위로 섞인 말과 더 먹으라며 내 접시에 음식을 올려주는 그 조심스러운 배려가 내게는 싫을 리 없었다.

세상의 가혹함에 푹 시들어있던 터라 그 진심어린 관심이 그저 어린 맘에 내심 좋았던 것이다.






식사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가 낯설고 활기찬 강남의 조류를 따라 그녀를 내 옆에 두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여자와 단둘이서 산책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또 긴장이 내 몸짓을 고장 냈지만 그녀는 오랜만의 한국에서 밤거리를 걷는 것이 그리웠다며 마냥 아이처럼 해맑은 모습이었다. 그 귀여운 미소와 재지 않은 순수함이 내 가슴에 미세한 떨림을 한 번 더 주었던 것이다.

어쩌면 보잘것없고 떼 묻은 내가 그녀를 그때부터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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