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 - 1

< 정의의 배심원 1 > 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인철

연우는 이 틈을 타 상아에서 받은 메모리 카드의 사진과 파일, 통장 사진을 지상에게 전송했다. 또한 현오가 보낸 녹음, 메시지, 통화 내용도 함께 보냈다. 몰래 메모리 카드의 영상을 본 지상은 중얼거렸다.

“이쯤 되면 몇 분의 비밀은 완전히 드러났네.”

지상은 도진 쪽을 향해 냉소적인 눈빛을 던졌다.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습니다. 진실은 태양과 같습니다.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결정적인 증거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겠습니다.”

모니터에 사고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든 창문은 닫혀 있다. 영채는 도진의 고함 소리에 눈을 뜬다. 준영은 잠들어 있다. 상태와 도진이 운전을 교대한다. 순식간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 차의 측면과 충돌한다. 운전석 에어백만 터진다. 차는 한 바퀴를 회전한 뒤 가로수를 들이받는다. 멀쩡한 도진은 곧 정신을 차린다. 세 사람은 충격으로 기절한 상태이다. 도진은 에어백을 핸들에서 뻬내어 트렁크에 숨긴다. 이어 상태를 끌어 운전석으로 옮긴 후 블랙박스를 확 잡아 뜯는다.

그 순간 화면이 정지되었다.

“저런 나쁜 놈이 있나.”

“친구에게 누명을 씌운 거네.”

“즉시 구속해라!”

사방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때 도진이 눈을 부릅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씨발, 좆 까고 있네!”

“증인,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앉으세요.”

“그래그래! 내가 바꿔치기했다. 그래서 뭐? 뭐가 문제인데? 쟤는 내 노리개야. 내 물건을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너희들이 뭔 상관이야!”

그는 상태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경위! 증인을 제지하세요.”

경위들이 도진을 붙잡았다.

“놔, 안 놔? 개새끼들아, 놓으라고! 나 백도진이야! 놔! 놔!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는 난동을 부렸다.

“저 자식 사이코잖아.”

“도원그룹 후계자가 이런 놈이었어?”

“백 회장과 다르게 개차반이네.”

“저런 미치광이는 몽둥이가 약이야!”

곳곳에서 비난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진 측 자리만 조용했다.

“증인, 또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면 감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재판장의 경고에도 그는 난동을 멈추지 않았다. 연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결국 증거를 이길 수 있는 거짓말은 없지.”

철컹, 도진의 손목에 은팔찌가 채워졌다. 이 모습에 성국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회한의 눈물이 그의 눈가를 적셨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어. 인생을 헛산 거야.’

그 순간 성국은 가슴을 쥐어짜며 바닥에 쓰러졌다.

“회장님! 회장님!”

“빨리 구급차를 불러! 어서!”

수행비서는 그를 업고 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석낙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이제 탄탄대로는 끝났네.’

“검찰 측은 이 증거에 대해 반대 심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석낙은 항복을 선언했다.

“뭐라고? 알겠어. 지금 당장 갈게.”

도원 일보 기자들이 울리지도 않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슬금슬금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동안 도진에게 우호적인 보도를 해왔던 원군들마저 등을 돌렸다.

도진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보며 연우가 중얼거렸다.

“돈으로 사람의 목숨도 살 수 있다는 당신의 잘못된 가치관에 철퇴를 내린 거야. "

“이로써 백도진이 진범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 도주 우려가 있으므로 즉각 구속 수사가 필요합니다!”

지상의 강력한 주장에 심 판사는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듯 윤철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이어 석낙을 부르더니 무언가를 속삭인 후 말했다.

“검찰이 공소를 취하했으므로 이 재판은 각하합니다. 그리고 백 도진 씨는 도주 우려가 상당하므로 법정 구속을 명합니다. 이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수진이 한 사내와 함께 법정으로 들어섰다.

“재판장님, 검사와 상대방 변호인을 고발할 사건이 있습니다. 이에 재정증인을 신청합니다.”

재정증인은 사전에 소환되지 않은 증인으로, 법정에서 선정되는 증인이다.

순간 석낙은 이 증인이 자신에게 매우 불리하다고 간파했다.

“갑자기 재정증인이라니요?”

“검찰 측과 사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증인은 거부합니다.”

심 판사는 석낙과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윤철을 통해 검찰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공동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몰아가려는 암묵적인 합의였다. 그래서 잠시나마 동반자였던 고 검사를 보호하고 싶었다.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재판부가 기각하면 지금 언론에 폭로하겠습니다!”

지상이 저돌적으로 나왔다. 재판장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비추었다. 심 판사는 더 이상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다.

“허락합니다.”

모니터에 운전석에 있는 상태의 모습이 떴다. 지상이 심문을 시작했다.

“증인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CCTV 복원 전문가입니다.”

“이 영상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게 뭔가요?”

“이것은 시간을 조작한 것입니다.”

“네? 저희가 보기에는 잘 모르겠는데요?”

“없던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인데, 시간 변경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예시를 보여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사내가 USB를 노트북에 꽂자, 화면에 자동차 경주 장면이 보였다. 이어 타이머 시간을 자유롭게 바꿨다.

“그럼, 이 영상에서 의심스러운 점은 무엇인가요?”

“사고 20분 전의 영상입니다.”

“정말인가요?”

CCTV의 시간이 ‘2015.8.3. AM 1:37’을 가리킨다. 사내가 마우스를 움직이자 ‘AM 1:57’ 장면과 동일한 모습이 나타났다.

“와~”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저 영상은 형사소송법 제308조 2항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로, 위법수집증거의 배제법칙에 따라 증거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석낙은 자신이 고발 대상이기에 필사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그리고 사내에게 물었다.

“증인이 자발적으로 증언한 건가요? 혹시 피고 측에서 금품이나 협박을 받지 않았나요?”

“아, 아닙니다. 하도 통사정 하길래… 감사의 의미로 블랙박스 하나는 샀어요.”

방청객들의 시선이 수진에게 쏠리자, 그녀의 얼굴은 붉어졌다.

그 사내는 도원 전자의 보복에 두려워 증언을 거부하던 사람들 중에서 어렵게 찾아낸 인물이었다. 수진은 그에게 영상 분석을 의뢰해 시간 조작을 밝혀냈고, 간곡히 증언을 요청한 것이다.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수진은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자 실망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상은 여기서 고삐를 더욱 조였다.

“검사님은 CCTV 영상을 검찰 첨단범죄수사부에서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복구했다고 하던데, 이를 입증할 수 있습니까? 만약 거부하신다면, 검사님은 증거를 조작한 것이 됩니다. 지금 공개해 주시죠.”

지상의 이 추궁은 그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와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석낙이 대답하지 못하자, 심 판사는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겼다.

‘피고인이 무죄가 되었으니 태양 부산 대표 자리는 날아갔어. 글구 검찰이고 나발이고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공정한 판사로서의 이미지를 쇄신해야 해!’

“검사님, 반론하세요? 안 하실 겁니까?”

“그, 그게… 백도진을 변호하는 측에서 받았습니다.”

“공명정대해야 할 검찰이 중요한 증거를 검증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가 아닌가요?”

“...”

“그러면 조작된 영상을 제공한 사람은 누구죠?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검사님은 증거 조작의 공범임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CCTV 조작의 실상은 이러했다. 얼마 전 도로공사 속초 사무소 직원이 연우와 지상의 반협박에 의해 삭제된 영상 파일을 넘겼다. 이 소식을 들은 기탁은 이 비열한 계책을 세웠다. 그러다 어제 재판부가 CCTV 검증과 백도진의 출석을 명령하자, 위기에 처한 기탁은 수찬에게 실행시키고 검찰 직원을 통해 석낙에게 전달했다.

사실 석낙은 CCTV 조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증인과 배심원 매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후보자의 정보만을 제공받았고, 진짜 영상이 복구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가 이를 증거로 제시하며 ‘검찰 첨단범죄수사부에서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복원했다’고 주장한 것은 신뢰성을 강조하고 세밀하게 조사했다는 자랑질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오기탁 변호사입니다.”

두 사람의 연합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손절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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