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 평결 - 2

< 정의의 배심원 1 > 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인철

상아가 신풍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발인이 끝난 상태였다. 그녀는 화장터로 급히 달려갔고, 숨이 가빠오는 가운데 귓가에 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심원들이 평결을 내리기 전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해! 그래야 오빠를 구할 수 있어.”

상아는 두식의 모친을 찾기 위해 주위을 살폈다. 주민들은 슬픔에 잠긴 모친 곁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중에는 블랙박스를 찾으러 갔을 때 만난 아주머니도 있었다.

‘지금 가면 저 분이 내 얼굴을 알아보기에 안 돼.’

상아는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모친은 넋 나간 표정으로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비록 남들은 골칫덩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그녀에게는 애지중지한 아들이었다. 주민이 조문을 마치고 떠나자, 상아는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저는 두식 씨의 여자 친구예요. 이제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며 제게 청혼을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아니, 그럼. 아가씨가 두식이 애인이란 말이요? 저번에 서울 가서 쭉쭉 빵빵한 아가씨를 데려온다고 했는데, 그 처자가 바로 당신이었나 보네. 이 녀석이 난생처음으로 효도하는구먼.”

모친은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상아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우연의 일치에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머니, 두식 씨가 없더라도 자주 찾아뵐게요.”

“어머니라고?”

서울 말투와 다정다감에 모친은 마치 며느리를 얻은 듯 좋아했다.

“저, 어머니. 혹시 두식 씨가 작은 전자 부품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요?”

“있어! 손톱만 한 크기인데, 중요하다고 해서 쌀독에 숨겨놨지. 그 때문인지 얼마 전에 도둑이 들어서 난장판이 되었어. 그 도둑놈이 눈깔이 삐었나 봐. 이런 집구석에 뭘 훔칠 게 있다고."

“그 쌀독이 어디에 있는데요?”

“어이 따라와.”

그녀는 신나서 앞장섰다. 부엌 한쪽에 쌀독이 눈에 띄었다. 모친은 반쯤 채워진 쌀의 바닥에서 비닐로 감싼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이렇게 은밀한 장소에 숨겨두었으니, 떼도둑이 와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두식은 나중에 다시 협박하려고 복제품을 모친에게 맡긴 것이었다. 상아는 법정에 갈 시간이 부족해 휴대폰으로 메모리 카드의 파일과 사진을 찍어 연우에게 보냈다.

“상태가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네 연기 실력에 달려 있어.”

“걱정 마세요. 배우 캐스팅은 정말 잘했어요.”

이 대화는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두 사람이 나눈 통화였다.


배심원들이 평의실을 나설 때, 연우의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그는 몸으로 막아세우며 외쳤다.

“잠깐만요!”

“이번엔 또 뭐야?”

“정말, 짜증나.”

“참, 지랄도 풍년이네.”

“다 끝난 마당에 비켜주세요!”

저항의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이 와중에 연우는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생생한 현장음과 동시에 사고 장면이 나타났다. 판기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래도 피고인이 유죄인가요? 곧 이 영상이 법정과 언론에 공개될 텐데, 피고인을 유죄로 평결한 당신들은 어떻게 될까요? 저는 평의 중 이 영상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줬다고 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고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

연우를 둘러싸고 있던 그들은 조용해졌다. 아니,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사실 이들에게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지만, 그가 겁을 주려고 덧붙인 말이었다.

“이제 평결을 다시 하시죠?”

연우가 정적을 깨뜨렸다.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당연히 무죄죠.”

“두말할 필요 없어요.”

성원이 재평결서를 작성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에 허탈해했다. 단, 민지를 제외하고는.


재판장에게 평결서가 전달되었다. 순간 심 판사는 멈칫하더니 찌푸린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배심원 전원은 피고인에게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결정했습니다.”

이어 그는 말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아들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법정은 환호와 탄식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정숙, 정숙하세요! 땅·땅·땅….”

심 판사는 분노를 가라앉히듯 방망이를 연달아 두드렸다.

지상은 함성을 질렀다. 석낙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상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억울함과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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